미국 전력망에서 중국산이 빠진다 — 빈자리를 채울 나라는 어디인가 트럼프 대통령이 26일(현지 시간) 행정명령에 서명했습니다. 고압 송전선·변전소·발전소에 쓰이는 외국산 전력 부품의 구매와 수입, 설치를 막는 조치입니다. 발표 다음 날인 27일, 국내 주요 전력기기 종목은 일제히 올랐습니다. 이 반응은 단순한 기대감이 아닙니다. 공급망 재편이 시작됐다는 시장의 판단입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7일 오전 9시 25분 기준 HD현대일렉트릭은 전 거래일 대비 9.28% 오른 80만 1000원에 거래됐습니다. 효성중공업은 6.04% 상승한 296만 6000원, LS ELECTRIC은 4.71% 오른 21만 1000원이었습니다. 시가총액 100위 밖의 산일전기는 11.76% 상승한 19만 7700원을 기록했습니다. 같은 시각 코스피지수는 2%대 상승세였는데, 전력기기 종목은 그 흐름보다 더 강하게 움직였습니다.
이번 행정명령은 69kV 이상 송전망과 주요 발전·변전 설비에 들어가는 장비 전반을 대상으로 합니다. 대형 변압기, 발전기, 차단기, 에너지저장장치(BESS), 인버터가 포함됩니다. 인버터는 태양광·배터리 전력을 교류로 바꾸는 핵심 부품입니다. 원격 제어용 소프트웨어(SCADA, 산업 설비를 원격으로 감시·제어하는 시스템)까지 규제 범위에 들어왔습니다. 안보 위험이 있는 국가와 연계된 장비에 대해서는 보안 강화, 네트워크 격리, 원격접속 차단에 더해 교체와 철거까지 명령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시장에서는 이 조치의 실질적 대상을 중국산 기자재로 봅니다. 전 세계 배터리와 인버터 생산의 80%를 중국이 점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 서명 배경으로 "첨단 제조업, 데이터센터, AI, 국방 생산의 급속한 성장으로 풍부하고 안정적인 전력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대용량 전력 시스템에 대한 공격이 성공하거나 공급이 중단될 경우 국가 안보에 치명적"이라고 했습니다. 에너지 안보와 사이버보안 두 축이 이번 조치의 근거입니다.
단순 관세 인상과는 다른 효과가 예상됩니다. 이번 명령은 가격이 아닌 공급망 원산지와 사이버보안 검증 자체를 미국 조달의 핵심 기준으로 바꿉니다. 관세는 가격 경쟁력을 낮추는 데 그치지만, 원산지 검증 요건은 아예 입찰 자격을 제한합니다. 중국 기업이 가격을 내려도 통과할 수 없는 구조가 생기는 것입니다. 시장에서 국내 업체의 가격 협상력이 강화될 것으로 보는 근거가 여기 있습니다.
증권가에서는 이번 행정명령이 국내 전력기기 제조사에 장기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평가합니다. 한 증권가 관계자는 "노후 설비 및 중국산 기기 교체 수요가 본격화될 경우 국내 업체들의 북미 수주 잔고와 실적 개선세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라고 했습니다. 다만 이는 증권가의 방향 전망으로, 실제 수주 시점과 규모는 미국 정부의 후속 세부 규정 확정 이후에 구체화될 것입니다.
이번 행정명령의 핵심은 '가격 규제'가 아니라 '자격 규제'라는 점입니다. 미국 전력망 조달에서 원산지와 사이버보안 검증이 통과 요건으로 바뀌면, 북미 시장에 이미 공급 이력과 인증을 갖춘 국내 업체들이 구조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됩니다. HD현대일렉트릭, 효성중공업, LS ELECTRIC, 산일전기는 이날 코스피 평균 상승률을 앞선 채 장을 시작했습니다. 시장은 이미 그 자리를 계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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