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바이오팜, 뇌전증 약 하나에만 기대던 구조가 바뀐다 뇌전증 치료제를 처방받는 환자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뉩니다. 발작을 완전히 억제하기 어려운 난치성·중증 환자, 그리고 이제 막 진단받은 초기·경증 환자입니다. SK바이오팜은 지금까지 전자만 겨냥해왔습니다. 이번 계약은 그 공백을 채우려는 시도입니다.
SK바이오팜은 바이오헤이븐 바이오사이언스 아일랜드와 뇌전증 신약 후보물질 '오파칼림(BHV-7000)'에 대한 전 세계 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총계약 규모는 최대 7억 9500만 달러, 원화로 약 1조 1000억 원입니다. 이 중 계약 시점에 지급하는 계약금이 4억 달러이고, 임상·허가 등 단계를 통과할 때마다 지급되는 단계별 기술료가 3억 9500만 달러입니다. 상업화 이후 매출에 따른 경상 로열티는 이 금액과 별도로 지급합니다. 오파칼림 외에도 같은 계열의 칼륨채널 활성화제 화합물과 약물 발굴 플랫폼까지 함께 확보했습니다.
SK바이오팜의 기존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는 약 20%의 발작 완전 소실률을 앞세워 난치성·중증 환자를 주요 대상으로 삼아왔습니다. 반면 오파칼림은 단계적 용량 조절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어, 초기·경증 환자에게 적합할 것으로 삼성증권은 분석했습니다. 같은 뇌전증 치료제지만 겨냥하는 환자군이 달라, 두 제품이 서로의 매출을 잠식하지 않고 사업 범위를 넓히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이미 미국에 구축된 세노바메이트의 영업망과 의료진 관계를 오파칼림에도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비용 측면에서 유리합니다.
SK바이오팜은 현재 미국에서 세노바메이트(현지 제품명 엑스코프리) 하나로 매출 대부분을 만들어내는 구조입니다. 단일 제품에 매출이 집중되면, 특허 만료나 경쟁 약물 등장 같은 외부 변수 하나에 회사 전체 실적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서근희 삼성증권 연구원은 "이번 기술 도입은 세노바메이트 단일 제품 의존에 따른 구조적 위험을 낮추고 성장 동력을 다각화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같은 의료진과 영업 채널을 쓰면서 새 제품을 얹는 방식이어서, 처음부터 인프라를 구축하는 비용 없이 제품군을 확장할 수 있습니다.
오파칼림이 실제로 환자에게 쓰이려면 임상 결과가 먼저입니다. 현재 성인 부분발작 환자를 대상으로 글로벌 임상 2·3상이 진행 중이며, 올해 말 첫 번째 주요 지표 결과가 나올 예정입니다. 두 번째 임상 결과 발표는 2028년, 미국 시장 출시 목표는 이르면 2029년입니다. 삼성증권은 임상 성공 확률을 80%로 가정해 오파칼림의 신약 가치를 1조 7853억 원으로 추산했습니다. 이 수치는 삼성증권의 자체 추정치이며, 임상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삼성증권은 이번 계약 발표 이후 SK바이오팜의 목표주가를 13만 원에서 14만 원으로 7.7% 올렸습니다. 투자의견 '매수'는 유지했습니다. 서근희 연구원은 "세노바메이트의 처방 기반과 영업망, 의료진과의 관계를 활용해 자기잠식이 아닌 세대교체형 전환이 가능하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이는 삼성증권 한 곳의 분석이며, 목표주가와 투자의견은 기관별로 다를 수 있습니다.
오파칼림이 실제로 환자에게 처방되기까지는 최소 4년이 남아 있습니다. 올해 말 나오는 첫 임상 결과가 사업 구조 변화의 실질적 출발점이 됩니다. SK바이오팜은 세노바메이트 하나로 미국 시장에 진출한 회사였습니다. 이제 그 영업망 위에 새 약을 올려놓을 수 있는지, 그 첫 답은 올해 안에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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