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 가격은 왜 계속 오르는가 —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구조] AI 칩에 들어가는 메모리 하나가 현물 시장에서 480만 원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장기공급계약을 맺은 빅테크조차 물량을 모두 받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물량은 줄었는데 수출액은 늘었습니다. 가격이 그 차이를 메우고 있습니다. 이것은 일시적인 수급 불균형이 아닙니다.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5월부터 7월 사이 D램 수출 물량은 6억 8170만 개에서 5억 9174만 개로 13.2% 감소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기간 전체 D램 수출액은 114억 2837만 달러에서 135억 5155만 달러로 18.5% 늘었습니다. 수출단가는 16.76달러에서 22.9달러로 36.6% 급등했습니다. 팔리는 개수는 줄었지만, 개당 가격이 올라 총액은 늘었습니다.
D램 수출 물량이 줄어드는 이유 중 하나는 HBM4 생산 방식에 있습니다. HBM은 고대역폭메모리로, D램 여러 장을 수직으로 쌓아 만드는 제품입니다. 최신 버전인 HBM4는 전작 HBM3E보다 생산 수율이 낮습니다. 수율은 전체 생산 투입 중 정상 출하가 가능한 비율을 말합니다. 수율이 낮을수록 같은 HBM을 만들기 위해 소모되는 D램이 늘어납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HBM은 최신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될수록 수율이 떨어지는 특성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엔비디아 등 빅테크의 HBM4 수요가 커질수록 D램 공급 부족은 심화됩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장기공급계약(LTA) 중심으로 판매 구조를 바꿨습니다. 장기공급계약은 특정 고객사에 일정 물량을 약정 기간 동안 공급하는 방식입니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는 2031년까지 생산능력의 약 70%를 LTA 물량으로 배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계약 상대는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글로벌 빅테크입니다. LTA 외 물량은 현물 시장에 나오는데, 이 비중이 줄어들수록 현물 가격은 더 가파르게 오릅니다.
장기공급계약을 맺었다고 해서 공급이 보장되지는 않습니다. HBM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계약 물량조차 전량 공급받지 못하는 사례가 생기고 있습니다. 그 결과 현물 시장 가격은 계약 가격보다 훨씬 높습니다. 메모리 시장 조사업체 메가그리드서플라이에 따르면 HBM3E 36GB 현물 가격은 2100달러(약 287만 원)입니다. LTA 계약 가격인 약 50만~70만 원보다 4~5배 높은 수준입니다. 현재 양산이 조율 중인 HBM4 16단 제품의 현물 가격은 3500달러(약 480만 원)에 형성돼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평택캠퍼스의 파운드리 생산라인 S5를 이르면 내년부터 메모리 설비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파운드리는 반도체 위탁생산 라인으로, 이를 메모리 전용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SK하이닉스는 용인과 호남권 거점 확대에 더해 일본 기업과의 합작공장 설립 가능성까지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가 사실상 최대주주인 일본 낸드플래시 1위 업체 키옥시아와의 협력 확대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안기현 전무는 "계획된 신공장이 가동돼도 품귀 현상이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완화되는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D램 수출 물량은 줄었지만 단가가 36.6% 오르면서 수출액은 늘었습니다. 이 가격 상승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으로 이어집니다. 금융투자업계 컨센서스(시장 평균 전망치)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3분기 영업이익은 116조 3790억 원으로 전 분기보다 30% 이상 높아질 전망입니다. 영업이익 100조 원 돌파는 한국 기업 사상 처음이며, 전 세계 빅테크를 통틀어도 처음입니다. SK하이닉스의 3분기 영업이익도 79조 1565억 원으로 전 분기보다 30.7%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현물 시장에서 HBM4 하나가 480만 원에 거래되는 구조는, 당분간 이 흐름을 유지하는 배경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