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슈퍼가 조건을 내걸었다 5월까지 대형마트 새벽배송 반대 성명을 냈던 단체가 입장을 바꿨습니다. 단, 조건이 붙었습니다. 5년간 5000억 원. 그 돈이 들어오면 반대를 거두겠다는 것입니다. 소상공인 단체 전체가 움직인 것은 아닙니다. 균열이 생긴 자리를 들여다봤습니다.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이하 연합회)는 최근 산업통상자원부와 중소벤처기업부에 상생 제안서를 제출했습니다. 핵심 요구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에 동네 슈퍼의 디지털 전환 지원 근거 조항을 추가해달라는 것입니다. 5년간 국비 5000억 원을 투입해달라고 명시했습니다.
연합회가 요청한 항목은 네 가지입니다. 첫째, 지자체 공공 배달앱 안에 '동네수퍼 1시간 쾌속장보기' 전용 카테고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둘째, 판매정보시스템(POS)과 재고 관리 시스템을 공공 배달앱에 실시간으로 연결해 주문 편의성을 높이는 것입니다. 셋째, 정부·지자체 지원으로 배달 수수료를 0원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넷째, 반찬 가게·떡집 등 동네 상인이 함께 묶음 배송하는 인프라를 만드는 것입니다. 연합회는 이 방안이 법제화되면 네이버쇼핑·쿠팡과 대등한 디지털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연합회는 지난 5월 대형마트의 심야 영업 제한 완화와 새벽배송 허용 법안이 국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상정됐을 때 유감을 표하고 철회를 촉구했습니다. 불과 수개월 만에 입장이 달라진 셈입니다. 연합회 관계자는 "온라인 쇼핑이 대세가 됐고 새벽배송을 소비자들이 포기할 수 없게 됐다"며 "시대가 변하고 있다는 걸 우리도 인식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단, 이번 수용 의사는 상생 방안이 법제화되는 것을 전제로 한 조건부입니다.
연합회와 함께 반대 성명을 냈던 소상공인연합회와 전국상인연합회는 기존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전국상인연합회는 "향후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지만 반대 입장을 냈던 당시와 달라진 것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소상공인연합회도 "대형마트 새벽배송 허용이 모든 소상공인 업종과 골목상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며 입장 변화가 없음을 밝혔습니다. 세 단체가 함께 반대해온 연대가 일부 흔들린 상황입니다.
연합회 관계자는 이번 입장 변화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새벽배송 규제 완화에 무조건 반대하기보다는 운동장의 기울기를 바로잡아 달라는 게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건강한 생태계 조성과 상생이라는 대원칙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어떻게'라는 부분에서는 상당히 유연해졌다"고도 했습니다. 반대의 논리가 바뀐 것이 아니라 요구의 방식이 바뀐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지금 국회에는 대형마트 심야 영업 제한을 완화하고 새벽배송을 허용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계류 중입니다. 연합회의 이번 제안은 그 개정안에 동네 슈퍼 지원 조항을 함께 담아달라는 요청입니다. 법안 심사 과정에서 이 조항이 반영되는지 여부가 연합회의 최종 입장을 결정하게 됩니다. 5월의 반대 성명이 조건부 수용으로 바뀌는 데 걸린 시간은 석 달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