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서버 한 대에 들어가는 부품 80만 개, 삼성전기가 다 댄다 엔비디아의 신형 칩 '베라 루빈' 한 장에 MLCC 80만 개가 들어갈 전망입니다. 손톱보다 작은 이 부품이 AI 서버의 핵심 부품으로 자리 잡았고, 그 시장을 선점한 기업이 삼성전기입니다. 이번 계약은 예외적 사건이 아닙니다. 올해만 세 번째 대형 계약입니다.
삼성전기는 글로벌 빅테크와 AI 서버용 MLCC 공급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계약 규모는 1조 722억 원으로, 삼성전기가 체결한 MLCC 공급 계약 중 역대 최대입니다. 납품 시점은 내년 한 해로, 해당 빅테크가 생산하는 AI 반도체에 탑재될 물량입니다. 올해 6월 체결한 약 4500억 원 계약보다 두 배 이상 큰 규모입니다. 올 들어 삼성전기의 MLCC 누적 수주액은 3조 3200억 원에 달합니다. 6월 4500억 원, 7월 3000억 원, 이번 1조 722억 원이 대표적입니다. 이 계약들은 글로벌 기업 10여 곳과 맺은 최장 5년짜리 장기공급계약(LTA)의 일부를 구체화한 것입니다.
MLCC는 전자제품 회로에 전류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제어하는 부품입니다. 스마트폰·PC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쓰였지만, AI 서버에서는 요구 사양이 전혀 다릅니다. AI 서버용 MLCC는 고온·고전압 환경에서 24시간 멈추지 않고 작동해야 합니다. 일반 MLCC를 그냥 쓸 수 없는 이유입니다. 골드만삭스 전망에 따르면, AI 서버용 MLCC 시장은 2024년 14억 달러(약 1조 9000억 원)에서 2030년 58억 달러(약 7조 9000억 원)로 커질 것으로 추산됩니다. 6년 만에 네 배 수준입니다.
AI 서버용 MLCC를 제대로 양산할 수 있는 업체는 삼성전기와 일본 무라타 정도입니다. 진입 장벽이 기술 신뢰성에 있기 때문입니다. 삼성전기는 이 시장에서 40% 이상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이미 가동률이 6월 말 기준 91%에 달했습니다. 추가 수주에 맞춰 생산을 늘리려면 공장 증설이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삼성전기는 필리핀 라구나주 칼람바에 MLCC 제3공장을 짓고 있으며, 부지 확보 15개월 만인 내년 1분기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무라타가 착공 후 완공까지 2년여 걸린 것과 비교하면 일정을 크게 앞당긴 셈입니다. 부산 공장 MLCC 라인도 함께 증설해 생산능력을 매년 최대 20% 늘릴 계획입니다.
삼성전기가 가동률 91% 상태에서 이미 대형 계약을 잇따라 수주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계약은 체결됐지만 생산능력은 아직 따라오지 못한 구조입니다. 필리핀 신공장이 내년 1분기 가동되더라도, 이번 계약 물량은 내년 한 해 납품이 목표입니다. 증설 일정과 납품 일정이 거의 맞물려 있습니다. 다만 삼성전기는 기존 LTA(장기공급계약)를 바탕으로 수요를 미리 확정했기 때문에 생산 계획을 역산해 공장을 설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계약 선행, 생산 후속 구조로 리스크를 분산한 방식입니다.
삼성전기는 MLCC 외에 AI 칩 기판 사업도 함께 키우고 있습니다. 플립칩 볼그리드 어레이(FC-BGA)는 AI 칩과 기판을 연결하는 핵심 부품으로, 삼성전기는 베트남에 1조 8000억 원 규모 신공장을 건설 중입니다. 삼성전기의 올 상반기 매출은 6조 6663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6% 늘었습니다. 영업이익은 7209억 원으로 74.3% 증가했습니다. MLCC 등 컴포넌트 사업이 전체 매출의 절반에 가까운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AI 서버 수요 증가가 삼성전기 실적 전반에 직접 연결되는 구조입니다.
삼성전기가 글로벌 빅테크 10여 곳과 최장 5년의 장기공급계약을 맺어두었다는 점입니다. 이번 1조 722억 원은 그 계약들 중 내년 물량이 처음으로 숫자로 확정된 것입니다. 남은 계약 기업들의 연간 물량도 순차적으로 계약서로 바뀔 예정입니다. "수천억에서 수조 원 규모의 신규 계약이 잇따를 것"이라는 것이 삼성전기의 설명입니다. AI 인프라 투자가 집중되는 시기에 핵심 부품 공급권을 먼저 확보했다는 구조, 그것이 손톱만 한 부품을 둘러싼 1조 원짜리 계약의 배경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