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의약품 만드는 재료, 100개 중 95개가 외국산입니다 국내 바이오 기업들이 올해 연매출 5조 원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약을 만드는 재료의 95% 이상은 해외에서 옵니다. 배지, 필터, 레진 — 바이오의약품 공장이 매일 쓰는 소모품들입니다. 이것은 한 기업의 선택이 아닙니다. 업계 전반에 걸친 구조입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2024년 기준으로 집계한 결과, 국내 바이오 기업은 제품 생산에 필요한 원부자재의 95% 이상을 해외에서 수입했습니다. 배지(세포를 키우는 영양액)와 필터처럼 공정의 핵심을 담당하는 고부가가치 품목은 수입 비중이 이보다도 높습니다. 이 원부자재들은 바이오의약품 생산비용의 15~20%를 차지합니다. 100억 원어치 약을 만들면 재료비만 15억~20억 원이 해외로 나가는 셈입니다.
이 구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글로벌 싱글유즈 바이오프로세싱 시장 — 일회용 소모성 원부자재를 사용하는 바이오 생산 방식 — 은 이미 미국의 서모피셔·싸이티바, 독일의 머크·싸토리우스 등 4개 기업이 55%를 과점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수십 년간 글로벌 제약사와 함께 일하며 검증 실적을 쌓았습니다. 국내 바이오산업이 본격 성장한 것은 최근 10여 년 사이입니다. 시작점부터 이미 격차가 벌어져 있었습니다.
문을 막는 것은 '트랙레코드'입니다. 트랙레코드란 해당 원부자재가 실제 생산 공정에 적용된 이력과 검증 실적입니다. FDA 같은 해외 규제기관에 의약품을 등록할 때, 검증되지 않은 원부자재를 쓰면 그 재료가 품질과 안전성에 미치는 영향을 별도로 입증해야 합니다. 시간과 비용이 추가로 듭니다. 수요 기업인 CDMO(위탁개발생산 기업) 역시 고객사가 지정한 원료를 써야 하고, 바이오시밀러·신약 개발사도 이미 검증된 제품을 선호합니다. 국산 원부자재를 도입하려면 내부 테스트를 처음부터 다시 진행해야 해 추가 비용이 발생합니다. 수요 기업도 쉽게 바꾸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국산화가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일본은 배지부터 충전 공정까지 아우르는 대형 원부자재 회사를 자체 육성하는 대신, 이미 레퍼런스를 가진 해외 기업을 인수합병했습니다. 그 결과 바이러스 필터는 아사히카세이, 배지는 후지필름 아이셀로직스 등 자국 기업이 공급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바이온팩·한일화학고무공업·이셀·바이옥스 등이 포장재·세척제를 삼성바이오로직스·셀트리온에 공급하며 레퍼런스를 쌓고 있습니다. 다만 공정에 영향을 덜 미치는 저부가가치 품목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핵심 공정 소재로 올라가는 길은 아직 열리지 않았습니다.
성혜진 제약산업전략연구원 부원장은 "국내 바이오산업은 원부자재 측면에서 글로벌 공급망 이슈에 취약하다"며 국산화 촉진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직접 제조·품질을 보증하는 제도가 마련되면 국내 원부자재 기업의 부족한 트랙레코드를 일부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단순 인증을 넘어 세제 혜택까지 확대되면 수요 기업의 도입 비용도 낮출 수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정부는 올해 말 시행 예정인 CDMO 특별법 하위법령을 통해 배지·필터·레진 등 핵심 공정 품목의 제조·품질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직접 인증하는 제도를 도입할 계획입니다.
올해 말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원료물질 제조 및 품질 인증제도'가 시행됩니다. 이 제도가 배지·필터·레진 같은 핵심 원부자재로 확대 적용되면, 트랙레코드 없이는 진입하기 어려웠던 시장에 국내 기업이 공식 레퍼런스를 얻는 첫 통로가 됩니다. 수요 기업과 원부자재 기업 모두에게 적용 범위와 인센티브가 어떻게 설계되는지가 핵심입니다. 제도의 실효성을 좌우할 하위법령 내용이 나오는 시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이오의약품 원가의 최대 20%가 해외로 나가는 구조 — 그것이 바뀌는지는 이 제도의 설계에 달려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