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U 먼저 만들고 메모리 끼우던 시절이 끝났습니다 🤝 두 달 전 샌프란시스코에서 한 번 모였던 세 사람이 다시 모입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입니다. 자리는 9월 28일 오후 6시 뉴욕에서 열리는 코리아소사이어티 연례 갈라입니다. 공식 비즈니스 협상 테이블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업계가 이 저녁 식사를 주목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 상을 받는 쪽이 엔비디아입니다
27일 재계에 따르면 이 회장과 최 회장은 28일 저녁 뉴욕 코리아소사이어티 연례 갈라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황 CEO는 이 행사에서 '밴 플리트상'을 받습니다. 한미 관계 발전에 기여한 인물이나 단체에 주는 상입니다. 코리아소사이어티는 수상 배경을 설명하면서 삼성전자와 SK그룹, 현대차그룹과 맺어온 협력 관계를 특별히 거론했습니다. 한국 기업과의 장기 파트너십으로 한국을 글로벌 AI 인프라의 핵심 파트너로 끌어올렸다는 평가입니다.
◾ 7월에 모였고, 9월에 다시 모입니다
세 사람이 함께 자리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7월 24일 샌프란시스코 글로벌 AI 행사에서 이미 한자리에 모여 AI 반도체와 인프라 협력 확대를 논의했습니다. 그 뒤 두 달 사이에 삼성전자와 SK그룹은 각각 엔비디아와의 협력을 구체화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뉴욕 만남은 첫 인사 자리가 아니라, 이미 합의된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을 확인하는 자리에 가깝습니다. 여기에 'HBM 이후'를 겨냥한 장기 구상이 화두로 오를 가능성이 큽니다.
◾ 메모리를 골라 끼우는 시대가 지나갔습니다
HBM은 고대역폭메모리를 말합니다. AI 가속기의 GPU에 대량의 데이터를 빠르게 공급하는 적층형 메모리입니다. 세대별로 HBM4가 6세대, HBM4E가 7세대, HBM5가 8세대입니다. 엔비디아가 올해 본격 양산에 들어간 AI 가속기 베라 루빈에도 HBM4가 들어갑니다. 달라진 건 개발 방식입니다. 예전에는 GPU 설계가 먼저 정해지고 거기에 맞는 메모리를 골라 끼웠습니다. 지금은 초기 설계 단계부터 GPU와 HBM을 함께 맞추는 '공동 설계' 성격이 강해졌습니다. 메모리 업체가 엔비디아의 향후 GPU 로드맵을 얼마나 일찍 공유받느냐가 경쟁력을 가르는 구조가 된 겁니다.
◾ 이미 공급하는 것보다 아직 안 만든 것이 중요합니다
삼성전자는 2월에 HBM4 양산 출하를 시작하고, 5월에는 HBM4E 12단 제품의 고객사 샘플 공급도 시작했습니다. SK하이닉스와 함께 HBM4를 공급하는 단계는 이미 지났다는 뜻입니다. 두 회사가 지금 매달리는 건 HBM4E와 HBM5 같은 후속 제품을 엔비디아와 공동 개발·최적화하는 체제입니다. 전영현 삼성전자 DS부문장 겸 대표이사 부회장은 6월 방한한 황 CEO와 만나 HBM4E·HBM5를 포함한 장기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삼성전자는 앞으로 고객의 GPU 구조에 맞춰 메모리 성능과 전력, 인터페이스를 설계하는 '커스텀 HBM'까지 넓힐 계획입니다.
◾ SK는 메모리 밖으로 나갔습니다
SK그룹과 엔비디아의 협력은 이미 메모리 범위를 넘었습니다. 7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양사는 SK텔레콤이 엔비디아의 DSX 플랫폼과 베라 루빈 시스템을 기반으로 최대 2기가와트 규모의 AI 팩토리를 구축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2027년부터 단계적으로 가동합니다. AI 팩토리는 수만~수십만 개의 GPU를 연결해 AI 모델을 학습시키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규모 데이터센터입니다. AI 산업의 경쟁 축이 개별 반도체 성능에서 GPU·메모리·네트워크·전력·냉각을 묶은 시스템으로 옮겨가자, 엔비디아도 AI 팩토리 전체를 공급하는 사업자로 영역을 넓히고 있습니다. SK는 통신·데이터센터에 SK하이닉스 메모리를 붙여 이 시장을 공략합니다. 삼성전자도 엔비디아와 AI 메가팩토리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GPU 5만 개 이상을 투입해 반도체 설계와 공정, 장비 운영, 품질 관리에 AI를 적용하고, 가상 공간에 실제 공장을 구현하는 '디지털 트윈' 기술을 확대하는 프로젝트입니다.
◾ 미중 정상회담이 끝난 직후입니다
이번 만남은 미중 정상회담이 끝난 직후에 잡혔습니다. 미국의 대중국 첨단 AI 반도체 수출 규제와 중국의 자체 AI 반도체 육성이 맞물리면서, 엔비디아에게는 안정적인 생산·메모리 공급망 확보가 더 중요해졌습니다. 반대편도 마찬가지입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게는 세계 AI 가속기 시장을 장악한 엔비디아의 중장기 제품 전략을 먼저 아는 것이 HBM 투자 규모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입니다. 재계 관계자는 "AI 가속기 경쟁이 세대가 바뀔수록 GPU 업체와 메모리 업체가 수년 뒤 제품까지 함께 개발해야 하는 구조로 변하고 있다"며 "이번 행사는 공식 비즈니스 협상 자리는 아니지만 글로벌 AI 공급망을 이끄는 경영진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점에서 향후 협력 방향을 논의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 한 가지만 기억한다면
계약서에 서명하는 자리가 아니라도, 누가 누구와 몇 달 간격으로 계속 만나는지를 보면 공급망의 무게중심이 보입니다. 지금 확인할 수 있는 일정표는 두 개입니다. SK텔레콤의 2기가와트 AI 팩토리는 2027년부터 단계적으로 가동하고, 삼성전자의 HBM4E 12단은 5월부터 고객사 샘플이 나가 있는 상태입니다. 이 두 시점이 계획대로 지켜지는지가 앞으로의 협력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가 됩니다. 두 달 전 샌프란시스코에서 모였던 세 사람이 다시 만난다는 사실 자체가, 이 일정이 아직 살아 있다는 신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