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개였다 vs. 약속 안 했다 — 젤렌스키 연설 닷새 뒤, 대사대리가 외교부로 불려왔습니다 🪆 9월 28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로 안드리 베쉬킨 주한우크라이나 대사대리가 불려왔습니다. 박윤주 1차관이 마주 앉아 요구한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우크라이나 정부 차원의 공식 해명과 사과, 그리고 재발 방지. 발단은 닷새 전 뉴욕이었습니다. 북한군 포로 2명, 그리고 그들이 한국으로 왔다는 사실. 이 문장을 누가 먼저 꺼냈느냐가 지금 두 나라 사이의 문제입니다.
◾ 포로 2명, 그리고 닷새 사이에 벌어진 일
9월 23일 현지시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군 포로 2명이 한국으로 송환됐다는 사실을 공개했습니다. 27일 늦은 밤, 청와대가 입장문을 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추가적으로 필요한 조치를 검토중"이라는 문장이 들어갔습니다. 우크라이나를 향해 이런 표현을 쓴 것은 이례적입니다. 그리고 28일, 외교부의 초치가 이어졌습니다. 초치는 상대국 외교관을 자국 외교 당국으로 직접 불러 공식 항의나 유감을 전달하는 외교 조치입니다. 사흘 만에 입장문에서 대면 항의까지 올라간 셈입니다.
◾ 서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박 차관이 지적한 것은 "북한군 포로 송환에 관한 양국 간 명확한 대외 비공개 합의"가 있었는데도 우크라이나가 충분한 사전 설명이나 구체적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공개했다는 점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공보실이 비공개 합의 사실 자체가 없다고 발표했습니다. 박 차관은 이를 "허위 공보"라고 표현하며 강력한 유감을 전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도 소셜미디어에 "비공개 합의를 어기고 공개했다. 많이 아쉽다"고 적었습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의 한 소식통은 언론에 "비밀 유지를 약속하지 않았다"고 반박했습니다. 합의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놓고 양국 정상급이 서로 상대방이 사실과 다른 말을 한다고 지목하는 상황입니다.
◾ 연설의 청중은 유엔이 아니었다
제성훈 한국외대 러시아어과 교수는 "당초 젤렌스키 대통령의 연설은 한국을 겨냥한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배경은 전황입니다. 제 교수는 "이미 전쟁에서 이길 가능성이 없고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런 조건에서 "한국이 보다 깊숙이 우크라이나 문제에 개입하길 원했다"는 것입니다. 논리는 단순합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북한을 상대하고 있고, 한국도 북한과 맞서 있으니 같은 편에 서리라고 판단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제 교수는 "젤렌스키 대통령은 한반도에 새 전선을 만드는 등의 '확전'을 원했겠지만 한국은 러시아와도, 북한과도 관계를 관리해야 하는 입장"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계산의 전제가 어긋난 지점입니다.
◾ 화를 냈지만, 더 키울 이유가 없다
대통령까지 나선 진실 공방이었는데도, 한국 정부가 이 문제를 계속 키울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한러 관계에도, 남북 관계에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러시아도 목소리를 높일 이유가 없습니다. 종전 이후 한러 경제협력 재개라는 변수가 남아 있습니다. 더 눈에 띄는 쪽은 북한입니다. 지난해 1월 젤렌스키 대통령이 북한군 포로 생포 사실을 처음 밝힌 시점부터 지금까지, 북한은 아무 언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파병 초기에는 파병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이며, 이후로는 북한과 러시아의 '승전 서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으로 풀이됩니다. 포로 2명의 존재를 가장 먼저 부정해야 할 쪽이 가장 조용합니다.
◾ 지원은 끊기지 않는다
외교가에서는 이번 사태로 인도적 차원의 우크라이나 지원이 중단되거나 축소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합니다. 포로 송환을 둘러싼 잡음이 양국의 장기적 외교 관계까지 흔들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 깔려 있습니다. 한국은 그동안 인도적·재정적 지원을 이어왔습니다. 다만 우크라이나 정부의 살상무기 지원 요청은 거부했습니다. 분쟁 지역에 살상무기를 직접 지원하지 않는다는 원칙 때문입니다. 이 원칙이 이번 갈등의 밑그림입니다. 우크라이나가 원한 것은 이 선을 넘는 개입이었고, 한국이 지켜온 것은 이 선입니다.
◾ 한 가지만 기억한다면
이번 마찰의 쟁점은 포로 2명의 신변이 아니라, 한국이 이 전쟁에 어디까지 들어갈지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확인할 지점도 정해져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공식 해명과 사과를 내놓는지, 청와대가 언급한 "추가적으로 필요한 조치"가 실제 조치로 나오는지, 그리고 살상무기 지원 거부 원칙이 유지되는지입니다. 9월 28일 외교부 청사에서 대사대리가 들은 요구는 사과와 재발 방지였습니다. 두 나라가 이 문제를 공개 무대에서 다시 꺼낼지, 아니면 물밑에서 접을지가 다음 신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