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디오 목록으로

2026.08.24 07:16 · 팟캐스트

기업회생 ‘한국판 챕터11’ 시범 도입

서울회생법원, 조사위원 관행 손질채권-채무자 직접협상 중심 전환

스크립트 (본문 텍스트)

같은 뉴스, 네 가지 시선. AILENS입니다. 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갔습니다. 채권자도, 채무자도, 이제 어떻게든 살려보자는 데 동의했어요. 그런데 절차는 멈춥니다. 조사위원이 아직 오지 않았거든요. 기업회생절차가 시작되면, 서울회생법원은 거의 예외 없이 조사위원을 선임해왔습니다. 법으로 의무화된 건 아닌데, 실무에서는 사실상 기본 순서로 굳어진 거죠. 조사위원이 하는 일은 기업의 청산가치와 계속기업가치를 따져보는 겁니다. 이 회사를 지금 당장 팔면 얼마가 나오는지, 계속 운영하면 얼마를 기대할 수 있는지 — 그걸 수치로 정리하는 역할이에요. 그런데 도산 업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이 방식에 불만이 있었습니다. 조사에 시간이 걸리고 비용도 든다는 거야 그렇다 치더라도,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어요. 가치평가가 먼저 나오면 회생의 선택지가 그 숫자 안에서만 논의되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당사자들이 협상 테이블에 앉기도 전에 틀이 정해져버리는 거죠.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회생법원은 최근 정준영 법원장과 수석부장판사, 고연차 재판장들이 모여 이 관행을 바꾸는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결론은 — 모든 사건이 아니라, 조사위원 없이도 먼저 진행할 수 있는 사건을 골라서 시범 적용해보자는 거였어요. 채무자와 채권자가 먼저 회생 방안을 협의하고, 조사위원은 그다음에 오는 구조입니다. 저는 이 대목이 좀 걸렸어요. 조사위원이 늦게 오는 게 아니라, 아예 순서가 바뀌는 거거든요. 당사자끼리 먼저 이야기하고, 법원은 그 협상을 지켜보는 구조. 이건 미국의 챕터 일레븐, 그러니까 챕터 11 방식과 닮아 있습니다. 기존 경영진이 기업을 계속 운영하면서 채권자와 직접 협상해 회생계획을 만드는 방식이죠. 당사자의 자율성을 먼저 인정하는 겁니다. 뒤집히는 게 하나 있어요. 우리가 법정관리를 떠올릴 때, 법원이 주도하고 당사자는 그 판단을 기다린다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그런데 김상규 법무법인 로백스 대표 변호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채권자가 모두 동의해도 절차를 계속 진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법원도 여러 고민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요. 다들 동의했는데 절차 때문에 멈춘다 — 그게 지금까지의 현실이었다는 겁니다. 남는 건 이 질문입니다. 가치평가가 먼저 오는 구조에서는, 그 숫자가 협상의 출발점이 아니라 한계가 될 수 있어요. 시범 적용이 실제로 어떤 사건에 적용될지, 그리고 당사자 자율에 맡겼을 때 회생 결과가 달라지는지 — 아직은 아무도 모릅니다. 법원이 고민을 시작했다는 것, 그것만 확인된 거죠. 기억하실 것 하나. 법으로 정해진 것과 관행으로 굳어진 것은 다릅니다. 그리고 관행은 바뀔 수 있어요. 같은 뉴스, 네 가지 시선. AILENS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