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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이슈, 네 가지 시선

서울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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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26 12:42 · 팟캐스트

모호한 배임죄, 기업 투자 줄인다…한경협 “혁신 위축 우려”

한경협, 119개 상장사 분석배임 기소 이후 현금 45%↑“고의적인 배임 구분해야”경영판단원칙 법적 명문화 要

스크립트 (본문 텍스트)

같은 뉴스, 네 가지 시선. AILENS입니다. 어느 분기 재무팀 회의를 상상해봅시다. 기소 공시를 낸 직후입니다. 신사업 투자 안건이 올라와 있고, 누군가가 말합니다. "지금은 좀 기다리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 한 마디가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오늘은 그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한국경제인협회가 동국대 지인엽 교수팀에 의뢰한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배임 혐의로 기소됐다는 사실을 공시한 상장사 백열아홉 곳의 재무 자료를 분석한 건데요. 기소 공시 이후 기업들의 현금 보유 비중이 눈에 띄게 올라갔다는 내용입니다. 얼마나 올라갔냐면 — 기소 공시 시점에 직전 분기보다 약 두 퍼센트포인트 오르더니, 이후에도 계속 올라 일곱 분기 뒤에는 다섯 포인트 넘게 높아졌습니다. 분석 대상 기업의 평균 현금보유비율이 열두 퍼센트였다는 걸 감안하면, 거의 절반 가까이 더 쌓은 셈이거든요. 현금이 늘었다는 게 왜 문제냐고요. 현금은 안전한 자산이죠. 그런데 기업 입장에서 현금을 쌓는다는 건 그 돈으로 투자를 안 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신사업, 연구개발, 시설 확충 — 이런 의사결정에 제동이 걸렸다는 신호일 수 있는 거죠. 게다가 기업은 원래 단기간에 현금 보유 규모를 크게 바꾸기 어렵습니다. 자금 계획이 이미 짜여 있으니까요. 그런데도 이렇게 올라갔다면, 재무 전략 자체가 바뀐 거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여기서 제가 좀 걸렸던 지점이 있어요. 기소됐다는 게 유죄라는 뜻이 아니거든요. 이 연구에서도 유·무죄와 무관하게 이런 변화가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한경협 자료에 따르면 배임·횡령죄의 일심 무죄율이 전체 형사사건 평균의 두 배를 웃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 기소됐다가 무죄로 끝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그 사이에 이미 기업의 투자 행동이 달라져 있다는 거예요. 이건 한 회사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투자를 결정해야 할 경영진이 "나중에 이게 배임으로 해석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그 판단 자체가 조심스러워집니다. 보고서는 이 지점을 배임죄 적용 기준의 모호함과 연결해서 설명하고 있어요.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합리적으로 결정했더라도, 결과가 나쁘면 책임을 질 수 있다는 불안이 있는 거죠. 독일이나 일본은 이런 상황을 구분하는 원칙이 있다고 합니다. 경영자가 충분한 정보로 합리적인 절차를 거쳐 결정을 내렸다면, 결과적으로 손해가 나더라도 바로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거예요. 정상적인 실패와 고의적인 배임을 다르게 보겠다는 취지입니다. 미국과 영국은 아예 별도의 배임죄 규정이 없다고 하고요. 물론 배임죄 자체가 필요 없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주주나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경영자를 처벌하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맞죠. 다만 이번 연구가 보여주는 건 — 기소 자체가, 그것도 최종 결과와 상관없이, 기업의 행동을 바꿔놓는다는 거예요. 그게 어떤 의미인지는 좀 더 생각해볼 여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하나만 기억한다면 이겁니다. 유죄냐 무죄냐보다 더 빨리, 기업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는 것. 같은 뉴스, 네 가지 시선. AILENS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