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LENS

같은 이슈, 네 가지 시선

서울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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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01 23:22 · 팟캐스트

[투자의 창] 반도체와 네덜란드병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매크로분석실장

스크립트 (본문 텍스트)

같은 뉴스, 네 가지 시선. AILENS입니다. 어느 나라가 갑자기 엄청난 노다지를 발견했다고 상상해봅시다. 수출이 폭발하고, 외화가 쏟아져 들어오고, 나라 돈의 값이 오릅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자 다른 공장들이 하나둘 문을 닫습니다. 물건 값이 비싸져서 아무도 사지 않는 거죠. 풍요가 오히려 독이 된 겁니다. 1970년대 네덜란드 얘기입니다. 북해에서 가스를 대량으로 발견했고, 수출 호황이 왔고, 통화가치가 뛰었고, 제조업이 무너졌습니다. 그래서 이 현상에 나라 이름이 붙었습니다. 네덜란드병이라고요. 그런데 지금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몇 나라를 보면서 이 단어가 다시 나오고 있거든요. 대만은 올해 성장률이 9%에 달할 거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이웃 싱가포르, 말레이시아도 5~6%대를 넘길 것으로 보이고요.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AI 반도체 붐입니다. 과거에 원유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은 반도체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겁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올해 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인 2%를 크게 웃돌 것으로 예상됩니다. 반도체 수출이 그 이유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요. 그런데 여기서 제가 좀 눈여겨본 대목이 있어요. 6월 초까지만 해도 원화는 약했습니다. 오히려 달러 대비 내려가 있었거든요. 그러다가 석 달 사이에 원·달러 환율이 175원 이상 하락했어요. 원화 가치로 치면 열한 내지 열두 퍼센트 급등한 겁니다. 한국은행이 이 기간에 금리를 두 차례 연속으로 올렸고, SK하이닉스의 해외 발행 자금이 국내로 들어오면서 달러가 원화로 바뀐 영향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요. 환율에 민감한 산업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동차, 조선, 가전, 방산 같은 곳들은 수출할 때 달러로 받고 국내에서 원화로 비용을 씁니다. 원화 가치가 오르면 같은 물건을 팔아도 남는 게 줄어드는 구조예요. 이 산업들의 주가가 급락 이후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지금 시점의 신호입니다. 뒤집어 보면 이런 거죠. 반도체 호황이 잘 되는 건 맞는데, 그 호황이 오히려 다른 산업의 숨통을 조이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겁니다. 직접적인 피해 때문이 아니라, 통화가치와 금리라는 경로를 통해서요. 네덜란드병이 무서운 것도 바로 그 지점이거든요. 아무도 일부러 망하려고 한 게 아닌데, 잘 되는 분야가 커지면서 다른 곳이 자연스럽게 밀린다는 데 있습니다. 저는 이 대목이 좀 걸렸어요. 지금 한국이 딱 그 경계선 어딘가에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요. 정부가 늘어난 세수를 미래대응기금으로 쓰겠다고 밝혔습니다. 노르웨이가 국부펀드를 만들어 오일머니 충격을 흡수했던 것과 비슷한 방향입니다. 그건 나름대로 방향이 있는 결정입니다. 다만 한쪽에서는 금리를 올리면서, 다른 쪽에서는 재정을 늘리는 정책 조합은 복잡합니다. 기술 산업은 돈은 많이 버는데 사람은 많이 안 씁니다. 그 격차를 재정으로 메우려다 보면 원화 가치는 계속 올라가고, 그게 다시 반도체 이외 산업에는 부담이 됩니다. 지금 아시아에서 네덜란드병이 본격화됐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석 달 흐름으로 단정 지을 수는 없죠. 그런데 징후들이 하나씩 쌓이고 있다는 건 사실입니다. 오늘 기억할 것 하나만 남기자면 이겁니다. 반도체 이외 산업들이 다시 힘을 찾느냐, 그게 이번 호황이 진짜 실력으로 연결되느냐를 가르는 질문입니다. 그 대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같은 뉴스, 네 가지 시선. AILENS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