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01 12:52 · 팟캐스트
‘HBM 블랙홀’이 만든 기현상…노트북 안팔리는데도 범용 D램은 사상 최고가 [갭 월드]
■서종갑 기자의 갭 월드(Gap World) 8월 DDR4 고정가 25달러로 4% 껑충HBM 생산 잠식에 레거시 품귀 심화침체장 속 3분기 인상폭 23%로 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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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뉴스, 네 가지 시선. AILENS입니다.
산업용 통신장비를 만드는 작은 부품 회사가 있습니다. 납기일은 정해져 있고, 필요한 메모리 칩은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가격표를 보니 한 달 전보다 이십 퍼센트 넘게 올라 있습니다. 그런데 팔리는 노트북은 줄고 있다는 뉴스가 같이 들어옵니다.
수요가 줄었는데 가격이 오른다. 보통은 말이 안 되죠.
PC용 디램 가격이 지금 역대 최고치입니다. 지난달 기준으로 이십오 달러. 이 가격이 처음 집계됐던 이천십육년보다 여덟 배 넘게 오른 숫자거든요. 그런데 같은 기간 노트북 출하량은 올해만 전년 대비 십 퍼센트 넘게 줄 것으로 전망된다고 합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의 수치입니다.
이 역설을 만든 건 AI입니다. 정확히는 AI 반도체에 들어가는 고대역폭메모리, HBM이죠. HBM은 일반 디램보다 같은 면적의 웨이퍼에서 훨씬 적게 뽑혀 나옵니다. 메모리 공장들이 수익성 높은 HBM 쪽으로 라인을 옮기면서, 예전 방식으로 만들던 PC용 메모리 생산량이 확 줄어버린 겁니다.
여기에 하나가 더 붙었어요. PC 제조사들이 내년 공급 부족을 걱정해서, 연말까지 열 주치 이상의 재고를 미리 사두기 시작한 거예요. 수요가 없는 게 아니라, 수요가 다른 층에서 만들어진 셈이죠.
저는 이 대목이 좀 걸렸어요.
낸드플래시 시장에서도 비슷한 구조가 나타나거든요. 요즘 최신 방식으로 만드는 범용 낸드 가격 상승은 거의 멈췄는데, 오래된 방식인 SLC 제품은 한 달에 이십 퍼센트 넘게 폭등했습니다. 통신장비나 스마트미터 같은 산업용 기기들은 부품을 마음대로 바꿀 수가 없어요. 처음 설계에 맞는 칩이어야만 하거든요. 그런데 만드는 쪽은 이미 생산 라인을 최신 공정으로 옮겨버렸으니, 그 칩은 이제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겁니다.
소비자가 줄어도 가격이 오를 수 있다. 이게 지금 메모리 시장이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뒤집히는 게 있어요. 보통 오래된 제품은 새 제품보다 싸야 하죠. 그런데 지금 구형인 DDR4 메모리가 최신형 DDR5보다 더 비싸게 팔리고 있습니다. 이미 쓰이고 있는 장비를 바꾸기가 어렵다 보니, 구형에 묶인 수요가 계속 그쪽으로 몰리는 거거든요. 새것이 더 좋은데 헌것이 더 비싼 상황.
제가 마음에 걸리는 건 이겁니다. AI 인프라 투자 경쟁이 계속되는 한, 이 구조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거예요. 제조사가 수익성 좋은 라인을 다시 구형 쪽으로 돌릴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럼 산업용 장비를 유지해야 하는 쪽은 어떻게 될까요. 가격을 받아들이든지, 설계를 바꾸든지, 아니면 기다리든지. 선택지 자체가 좁아지고 있는 겁니다. 트렌드포스도 "제품별로 가격 궤적이 엇갈릴 것"이라고만 했을 뿐, 이 격차가 좁혀질 거라고는 말하지 않았어요.
오늘 기억할 것 하나만 남긴다면, 이겁니다.
수요가 줄어도 공급이 더 빨리 줄면 가격은 오른다. 지금 메모리 시장은 AI가 바꿔놓은 공급 구조 위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같은 뉴스, 네 가지 시선. AILENS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