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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이슈, 네 가지 시선

서울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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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11 09:53 · 팟캐스트

한 시간에 10억, 자리는 이미 없다

상품이 되는 오감만족 버진갤럭틱 우주여행 대기자 700명 넘어 1700만원 ‘디지털 단절’ 여행도 1년 전 매진 여행서 향까지…경험·기억 자체가 상품으로

스크립트 (본문 텍스트)

같은 뉴스, 네 가지 시선. AILENS입니다. 오늘은 11일 기준으로 나온 이야기를 가져왔어요. 고가 체험 소비 시장에 관한 건데, 숫자 하나가 좀 오래 머릿속에 남더라고요. --- 우주선 안에 앉아 있다고 상상해봅시다. 창밖으로 지구가 보여요. 검은 우주 배경에 빛나는 구체가 걸려 있는 거죠. 무중력 상태라 몸이 좌석에서 떠오릅니다. 이 시간이 딱 한 시간입니다. 이륙해서 착륙까지 한 시간. 그 한 시간의 가격이 10억 원이에요. --- 버진갤럭틱의 우주여행 얘기입니다. 내년 상반기 일정인데, 대기자가 이미 칠백 명이 넘는다고 해요. 마이클 콜글레이저 CEO가 직접 실적 발표에서 밝힌 숫자예요. 10억을 내고 한 시간. 이걸 어떻게 봐야 할까요. 그 사람들이 그냥 돈이 너무 많아서 쓰는 거라고 하면 쉽겠죠. 근데 저는 이 대목이 좀 다르게 읽혔어요. 이분들이 뭘 사는 건지를 생각해보면요. --- 고급차도, 명품 가방도 아니에요. '나 이거 했어'라고 말할 수 있는 경험을 사는 거거든요. 그것도 남이 복제할 수 없는 경험. 캐나다 로키산맥 기차 여행도 비슷한 맥락이에요. 버츄오소, 그러니까 전 세계 고급 여행사들의 네트워크에서 파는 상품인데, 열이틀 동안 휴대전화가 아예 안 터지는 지역을 기차로 달립니다. 가격이 천칠백만 원 가까이 되는데 1년 전에 이미 매진이에요. 연결이 안 되는 시간을 돈 주고 사는 거잖아요. 그게 상품이 된 거죠. --- 여기서 뒤집히는 지점이 하나 있어요. 보통 고가 소비라고 하면 티가 나는 걸 살 것 같잖아요.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브랜드 로고, 눈에 띄는 물건. 그런데 이 시장은 반대예요. 캐나다 오지에서 휴대전화 없이 보낸 열이틀. 버진갤럭틱 우주선에서 무중력으로 떠다닌 한 시간. 이건 사진 찍어도 잘 안 보이고, 설명해도 느낌이 안 전해지는 것들이에요. 그런데 바로 그게 희소성인 거죠. 돈이 있어도 아무나 못 가요. 예약 자체가 이미 막혀 있고, 막혀 있다는 사실이 가치를 올려요. --- 이 흐름이 향 시장에서도 나타나고 있어요. 국내 향수 시장이 지난해 일조 천팔백억 원 규모였는데, 삼 년 전보다 세 분의 이 가까이 커진 거예요. 업계 관계자가 이런 말을 했어요. "향은 특정 공간의 경험을 되살리는 대표적인 감각"이라고요. 호텔에서 맡았던 냄새를 집에서 다시 느끼고 싶은 거다, 라는 거잖아요. 경험을 사는 게 아니라 경험의 잔상을 사는 시장이 생긴 거예요. 저는 이 부분이 좀 묘하게 느껴지더라고요. --- 그러면 이게 결국 누구의 이야기냐 하면, 우주여행을 갈 수 있는 사람들 얘기에서 시작했지만 점점 넓어지고 있어요. 롯데호텔 제주의 빗속 달리기 패키지, 하나투어의 스페인 슈퍼카 드라이빙 상품, 파묵칼레 석회붕 앞에서 하는 식사. 규모는 다르지만 구조는 같아요. '나만의 경험, 남들과 다른 기억'을 파는 거거든요. --- 저는 이 사안에서 한 가지가 마음에 남아요. 경험을 소비하는 게 나쁜 건 아니에요. 근데 그 경험이 점점 '남이 못 하는 것'을 기준으로 설계되고 있다면, 우리가 무언가를 경험할 때 기준이 달라지는 거 아닐까요. 내가 이걸 좋아해서 하는 건지, 남이 못 하는 걸 한다는 느낌이 좋아서 하는 건지. 그 경계가 흐릿해지는 지점이 어딘가에 있을 것 같아서요. 정답이 있는 얘기는 아니에요. 다만 이 시장이 왜 이렇게 빠르게 커지는지, 그 안에 내가 있는 건 아닌지 한 번 들여다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 오늘 하나만 가져간다면 이거예요. 경험에 값을 매기는 시장이 커지는 게 아니라, '남이 복제할 수 없는 경험'에 값을 매기는 시장이 커지고 있어요. 그 차이가 이 흐름을 만들고 있고요. 같은 뉴스, 네 가지 시선. AILENS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