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28 18:59 · 팟캐스트
자기자본의 43.6%를 한 제품에 걸었습니다 🎲
세종 4.3조, 베트남 2.5조
스크립트 (본문 텍스트)
같은 뉴스, 네 가지 시선. AILENS입니다.
오늘은 9월 28일 이사회에서 결정된 소식 하나를 들고 왔습니다.
한번 상상해 봅시다. 회사 금고에 전 재산이 10만 원 있습니다. 그런데 이사회에 앉은 사람들이 그중 4만 3천 원을, 딱 하나의 제품 라인에 쏟겠다고 결정합니다.
삼성전기가 어제 한 일이 정확히 그겁니다. 세종에 들어가는 투자액이 회사 자기자본의 43퍼센트가 넘습니다. 절반에 가깝죠.
그것도 여러 사업에 나눠 쓰는 게 아니라, 반도체 기판 하나에요. 회사 역사상 단일 제품 투자로는 가장 큰 규모입니다.
저는 이 대목이 좀 걸렸어요. 보통 이렇게 안 하잖아요. 기업은 위험을 나누려고 하거든요. 여기 조금, 저기 조금.
그런데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이 부품 이름이 에프씨-비지에이입니다. 씨피유나 에이아이 가속기 같은 고성능 칩을, 메인보드에 연결해주는 판이에요. 신호도 보내고 전력도 흘려보내는.
말하자면 통역사 같은 겁니다. 칩은 엄청나게 빠르게 말하는데, 그 말을 바깥세상이 알아듣게 옮겨줘야 하거든요. 칩이 똑똑해질수록 통역사도 같이 똑똑해져야 합니다.
지금 생성형 에이아이 때문에 이 통역사가 부족합니다. 만들 수 있는 회사가 몇 안 되고요.
그런데 여기서 뒤집히는 대목이 하나 있습니다.
이 투자, 삼성전기가 혼자 결심한 게 아니라고 합니다. 글로벌 빅테크 고객사가 투자금을 지원하고, 앞으로 살 물량을 미리 보장해줬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도박처럼 보였던 판단이, 사실은 반대에 가까웠던 거죠. 살 사람이 먼저 와서 "지어달라, 돈도 같이 대겠다"고 한 거예요.
이게 좀 묘하지 않나요.
부품 만드는 회사가 고객사에 빌려주는 게 아니라, 고객사가 부품 회사에 돈을 들고 옵니다. 그만큼 이 판을 만들 수 있는 곳이 드물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제 마음에 걸리는 건 다른 쪽입니다.
이 공장, 지금 짓기 시작해서 2028년 9월에야 물건이 나옵니다. 2년 뒤죠.
에이아이 시장이 2년 뒤에 어떤 모양일지, 지금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반년 전과 지금도 이미 많이 다르잖아요.
그래서 이건 확신의 투자가 아니라, 어쩌면 두려움의 투자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 안 지으면 그 자리를 다른 곳이 가져간다는.
세종에 짓고, 베트남에도 같이 짓습니다. 한쪽이 멈춰도 다른 쪽이 돌아가게. 공급망이라는 말이 요즘 왜 그렇게 자주 나오는지, 이 배치를 보면 조금 느껴집니다.
오늘 하나만 남겨두고 싶습니다.
에이아이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보통 모델 이름을 말합니다. 어떤 게 더 똑똑한지. 그런데 그 뒤에서는, 칩과 보드를 이어주는 손바닥만 한 판 하나를 만들겠다고 회사 재산의 절반 가까이를 걸고 있어요.
에이아이는 소프트웨어처럼 보이지만, 결국 어디선가 누군가가 공장을 짓는 일입니다.
같은 뉴스, 네 가지 시선. AILENS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