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29 12:07 · 팟캐스트
비공개였다 vs. 약속 안 했다 — 젤렌스키 연설 닷새 뒤, 대사대리가 외교부로 불려왔습니다 🪆
靑, “사과 요구” 강경 입장 외교부, 28일 대사대리 초치 ‘지원 확대’ 원한 젤렌스키 韓은 한러·남북 관계 방점
스크립트 (본문 텍스트)
같은 뉴스, 네 가지 시선. AILENS입니다. 오늘은 9월 29일 기준으로, 며칠 사이에 벌어진 한국과 우크라이나 사이의 일을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상상해봅시다 —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입니다. 9월 28일이었어요. 한 나라의 외교관이 우리 외교부로 불려 들어옵니다. 초치, 라고 부르는 절차입니다. 잘못한 게 있으니 와서 들으시라는, 외교에서는 꽤 무거운 신호죠.
불려온 쪽은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대리였습니다. 며칠 전 뉴욕에서 있었던 일 때문이었어요.
유엔총회 연단이었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말했죠. 생포한 북한군 포로 두 명을 한국으로 보냈다고요. 그 자리에서 처음 공개된 사실이었습니다.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이게 곤란했습니다. 말하지 않기로 했던 일이라는 거죠.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소셜미디어에 적었습니다. 비공개 합의를 어기고 공개했다, 많이 아쉽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쪽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비밀 유지를 약속한 적이 없다고요. 서로 상대가 거짓말을 한다고 손가락질하는 모양이 된 겁니다.
여기서 잠깐 젤렌스키 대통령의 자리에 서 볼까요. 전쟁은 길어졌습니다. 이기기도 어렵고, 협상 테이블에서 유리한 카드를 쥐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죠. 제성훈 한국외대 교수는, 그 연설이 애초에 한국을 겨냥한 것이었다고 봅니다.
논리는 단순합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북한을 상대로 싸우고 있습니다. 그럼 한국도 같은 편이 아니냐. 좀 더 깊이 들어와 달라. 그런 요청을 연단에서 던진 거라는 해석이에요.
그런데 한국의 자리는 좀 다릅니다.
한국은 러시아와의 관계도 관리해야 하고, 북한과의 관계도 관리해야 합니다. 어느 한쪽 편에 완전히 서는 순간 잃는 게 생기는 구조죠. 그래서 그동안 인도적 지원, 재정적 지원은 해왔지만 살상무기를 달라는 요청은 거절해왔습니다. 분쟁 지역에 무기를 직접 보내지 않는다는 원칙 때문이에요.
이해가 가시죠. 같은 사안을 보고 있는데, 서로가 서 있는 땅이 다른 겁니다.
제가 이 대목에서 좀 걸린 게 있어요.
이 소란의 한가운데 있는 건 사람 두 명입니다. 붙잡힌 북한 병사들이죠. 그런데 정작 북한은 지금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작년 1월, 젤렌스키 대통령이 북한군 포로를 생포했다고 처음 밝힌 때부터 지금까지 침묵이에요.
처음에는 파병한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으니 말할 수가 없었을 겁니다. 그 뒤로는, 이긴 전쟁이라는 이야기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꺼내지 않는 것으로 읽히죠.
사람 둘이 국경을 넘어왔는데, 보낸 나라는 모른다고 하고, 받은 나라와 넘긴 나라는 약속을 어겼다며 다투고 있습니다.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요.
외교가에서는 이 일로 우크라이나 지원이 끊기거나 줄어들지는 않을 거라고 봅니다. 포로 문제로 생긴 잡음이 오래갈 관계까지 망칠 필요는 없다는 거죠. 러시아도 굳이 목소리를 높이지 않을 겁니다. 전쟁이 끝나면 다시 경제적으로 손을 잡아야 하니까요.
그러니까 아마 이 갈등은 물밑으로 내려갈 겁니다. 공개된 자리에서는 조용해지고, 보이지 않는 데서 정리되는 방식이죠.
오늘 하나만 기억하신다면 이겁니다. 외교에서 벌어지는 싸움은, 누가 잘못했느냐를 가리는 일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각자가 어디에 서 있느냐의 문제일 때가 더 많아요. 서 있는 자리가 다르면, 같은 약속도 다르게 기억됩니다.
정답은 제가 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이 일의 한복판에 이름도 나오지 않는 두 사람이 있다는 건, 저는 계속 생각이 나더라고요.
같은 뉴스, 네 가지 시선. AILENS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