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29 10:44 · 팟캐스트
70년 산 집에서 들것에 실려 나온 87세, 마드리드가 멈췄습니다 🏕️
87세 세입자 강제퇴거에 여론 폭발 마드리드 광장에 수만명 모여 월세 급등에 주거난 대책 촉구
스크립트 (본문 텍스트)
같은 뉴스, 네 가지 시선. AILENS입니다. 오늘은 9월 27일 기준으로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벌어진 일을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상상해봅시다. 아침에 현관문 부서지는 소리가 납니다. 경찰이 들어옵니다. 여든일곱 살 여성이 들것에 실려 집 밖으로 옮겨집니다.
그 집에서 70년을 살았습니다. 부모 세대부터요.
마리아 델 카르멘 아바스칼이라는 분입니다. 지난 23일 마드리드 레티로 지구에서 강제퇴거됐어요. 그 영상이 온라인에 퍼졌고, 사흘 뒤 마드리드 도심에 수만 명이 모였습니다.
먼저 이분이 어떤 상황이었는지부터 짚어보겠습니다.
2018년에 건물주가 바뀌었습니다. 그때 집을 직접 살 기회가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못 샀습니다. 돈이 없었으니까요.
그다음에 부동산 투자회사가 이 아파트를 사들입니다. 그리고 월세를 올립니다. 우리 돈으로 77만 원 정도 내던 걸, 410만 원으로요. 다섯 배가 넘습니다.
조정 끝에 255만 원까지 내려갔습니다. 하지만 연금으로 살아가는 여든일곱 살에게 255만 원은요. 그냥 불가능한 숫자죠.
여기서 잠깐 생각해볼 게 있어요. 이 과정에 불법이 있었나. 없습니다. 건물주가 바뀐 것도, 임대료를 올린 것도, 법원 집행으로 퇴거가 이뤄진 것도. 다 절차대로입니다.
그러니까 이건 누가 법을 어겨서 생긴 일이 아니에요. 법을 다 지켰는데도 여든일곱 살이 들것에 실려 나가는 일이 벌어진 겁니다. 저는 이 대목이 좀 걸렸어요.
그런데 마드리드에 모인 수만 명이 아바스칼 씨 한 사람 때문에 나온 건 아니었습니다.
부동산 업체 이데알리스타의 추산으로는, 스페인 주요 도시 월세가 최근 10년 사이 거의 두 배가 됐습니다. 십 년 전에 100만 원이었다면 지금은 200만 원인 셈이죠.
시위 현장에 서른여덟 살 그래픽 디자이너가 있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사는 분이에요. AFP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감당할 수 있는 집을 찾는 것 자체가 고생인데, 그마저도 쫓겨날까 봐 두려움 속에서 살아야 한다."
서른여덟 살이 어머니와 삽니다. 그리고 여든일곱 살이 들것에 실려 나갑니다. 같은 도시에서요.
영화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도 광장에 나왔습니다. 스페인 공영방송에 "이 사건은 마지막 방아쇠였다"고 했어요. 방아쇠. 이미 총알은 장전돼 있었다는 뜻이겠죠.
여기서 예상과 좀 다른 지점이 하나 있습니다.
시위대는 푸에르타 델 솔 광장에 텐트를 세우고 밤을 보냈어요. 백 개 가까이요. 이튿날에는 가족 단위 참가자까지 합세해서 야영 규모가 더 커졌다고 합니다.
푸에르타 델 솔이 어떤 곳이냐면, 마드리드의 대표 관광지입니다. 그러니까요. 관광객이 몰려오는 곳, 단기 임대 수요가 몰리는 곳. 집값 올리는 요인으로 지목되는 바로 그 흐름의 중심지에 텐트를 친 겁니다.
살 집이 없다고 항의하는 사람들이, 관광지 광장에서 잠을 자야 했다는 거죠.
그리고 아바스칼 씨는 퇴거 뒤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거기서 이렇게 말했어요. "내게 일어난 일이 다른 사람들에겐 일어나지 않도록 이 일이 계기가 됐으면 한다."
자기 집은 이미 잃었는데요. 다음 사람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남는 게 있습니다.
세입자 연합은 SNS에 "임대 시스템이 무너지든 정부가 무너지든 둘 중 하나"라고 썼습니다. 산체스 총리는 27일 사회당 집회에서 아바스칼 사례를 언급하면서 주택 법안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고 했어요. 임대차 계약 자동 갱신, 퇴거 제한 강화 같은 내용이 담길 걸로 예상됩니다.
다만 사회당이 의회 과반이 아닙니다. 통과될지는 아직 모릅니다. 내년 총선이 있으니 주거 문제는 계속 쟁점으로 남을 거고요.
법이 바뀌면 해결되는 문제인지. 아니면 바뀐 법으로도 다음 아바스칼 씨가 또 나오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 하나만 남긴다면 이겁니다.
이 일에서 규칙을 어긴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여든일곱 살이 70년 산 집에서 들것에 실려 나가는 거였어요. 규칙을 지켰는데도 이런 결과가 나온다면,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규칙 쪽에 있는 게 아닐까. 그 질문이 마드리드 광장에 수만 명을 모은 겁니다.
같은 뉴스, 네 가지 시선. AILENS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