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29 11:01 · 팟캐스트
평가받는 쪽이 평가하는 쪽에 20억을 냈습니다 🧾
서울·부산, GFCI 예산 20억 집행 산출사 멤버십·IR·행사 등에 사용 설문평가가 최종 순위 산정에 반영 “실물 경쟁력과 괴리 따져봐야”
스크립트 (본문 텍스트)
같은 뉴스, 네 가지 시선. AILENS입니다. 9월 28일 기준으로, 우리가 매년 기다리는 어떤 순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상상해봅시다. 지금 컴퓨터를 켜고, 어떤 홈페이지에 들어갑니다. 이름을 적고, 소속을 적고, 전문 분야를 적습니다. 그다음에 세계 도시들이 쭉 나옵니다. 여기서 금융업 하기에 얼마나 좋은지 점수를 매기면 됩니다. 10점 만점으로요.
증빙은 따로 없습니다. 정말로 그 회사에 다니는지 확인하는 절차가 없거든요. 이름 쓰고 소속 쓰면 끝이에요.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짐작이 되실까요. 세계 금융중심지 순위를 매기는 설문입니다. 영국의 한 컨설팅 회사가 반년에 한 번씩 발표하는 지수요. 이번 9월 발표에서 부산이 117개 도시 중에 22위를 기록했습니다. 역대 최고예요. 6년 전에는 50위권이었는데 말이죠.
그럼 이제 다른 쪽에서 봐볼게요.
부산시, 서울시, 그리고 부산국제금융진흥원이 이 순위를 만드는 회사에 돈을 냈습니다. 2018년부터요. 멤버십 연회비, 사업비, 광고비 이런 걸 다 합치면 20억 원이 넘어갑니다.
여기서 잠깐 생각해볼 대목이 있어요. 평가를 받는 쪽이, 평가하는 쪽에 돈을 냈다는 겁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누군가를 나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지자체 담당자 입장을 한번 생각해보면, 사실 다른 방법이 마땅치 않습니다. 부산국제금융센터를 지었어요. 기관들을 옮겨왔어요. 그런데 이게 잘 되고 있다는 걸 뭘로 보여줄까요. 눈에 보이는 숫자가 필요한 거죠. 순위만큼 알아듣기 쉬운 게 없잖아요.
그래서 순위를 올리려고 노력합니다. 홍보하고, 알리고, 부산이라는 이름을 금융인들 머릿속에 심으려고 하죠. 이게 잘못인가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뒤집히는 대목이 하나 있습니다.
이 순위표를 들여다보면 두 개의 점수가 있어요. 하나는 금융인들이 설문으로 매긴 점수. 다른 하나는 세계은행이나 OECD 같은 곳에서 가져온 객관적인 통계를 섞어서 낸 최종 점수요.
부산의 설문 점수는 1위 뉴욕과 똑같습니다. 런던보다는 오히려 높아요. 그런데 최종 점수는 뉴욕과 런던보다 낮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부산 좋다"고 말하는 정도와, 실제 숫자가 보여주는 정도 사이에 틈이 있는 거예요. 지수를 만든 회사도 이걸 알고 있습니다. 이 격차가 "강한 마케팅의 영향일 수 있다"고 자기들 입으로 설명했어요.
마케팅의 영향. 이 표현이 좀 오래 남았습니다.
부경대 이유태 교수가 한 말도 그렇더라고요. 부산국제금융센터가 세워진 게 2014년인데, 부산 경제가 전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4%대에서 움직이지 않았다는 거예요. 순위는 50위권에서 20위권으로 올라왔는데, 살림살이는 제자리였다는 뜻이죠.
저는 이 대목이 좀 걸렸어요. 순위가 오른 게 거짓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서울도 부산도 예전보다 훨씬 많이 알려졌어요. 그건 분명한 성과예요.
다만요. 알려지는 것과, 실제로 무언가가 바뀌는 것은 다른 일이잖아요. 회사가 들어오고, 사람이 모이고, 일자리가 생기고. 그런 건 순위표 어디에도 안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이 회사는 순위를 발표하면서, 동시에 "순위를 올리는 방법"을 자문해주기도 합니다. 세계금융센터연합의 한 연구자가 올해 보고서에서 이 점을 짚었어요. 이해상충 소지가 있다는 거죠.
시험 문제를 내는 사람이 과외도 하는 셈입니다.
오늘 하나만 남겨두고 싶어요.
순위가 오르면 기분이 좋습니다. 기사도 나오고, 보도자료도 나오고요. 그런데 그 순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누가 답했는지, 답한 사람이 정말 그 도시를 아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어요. 6년 동안요.
앞으로 "몇 위 올랐다"는 소식을 들으면, 한 번쯤 그 뒤를 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누가 매긴 점수인지요.
같은 뉴스, 네 가지 시선. AILENS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