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30 11:55 · 팟캐스트
자석 하나가 붙어 있었습니다. 문은 열려 있는데 기계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
노동부, 첫 공개 재해조사보고서 中 7건 분석 자석에 속은 센서… 생산 압박에 내몰리다 참변 보폭보다 17cm 넓은 철골 위 ‘위태로운 작업’ 혼동 부른 스위치 위치… 기초 방호장치도 실종 사람 실수 막는 ‘설비 자체 예방책’ 구축해야
스크립트 (본문 텍스트)
같은 뉴스, 네 가지 시선. AILENS입니다.
9월 30일 기준으로, 사실 꽤 무거운 이야기를 하나 가져왔습니다.
한 남자가 창고 지붕 위를 걷고 있었습니다.
발밑은 철골이었어요. 두 개의 철골 사이를 디디면서 앞으로 나가야 하는 구조였죠. 지붕은 살짝 기울어져 있었고요.
그런데 그 간격이 91센티미터였습니다. 사십대에서 오십대 한국 남성의 평균 걸음은 74센티미터거든요. 한 걸음마다 17센티미터를 더 뻗어야 했다는 겁니다.
한 번 해보시겠어요. 평소보다 한 뼘 반쯤 더 크게 다리를 벌리고, 기울어진 바닥 위를, 계속. 그러다 중심이 흐트러져서 발을 잘못 디뎠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건 플라스틱 채광창이었어요. 두께가 1밀리미터 조금 넘었습니다. 신용카드보다 얇습니다.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숨졌습니다.
이 사고 기록에 처음 적힌 말은 뭐였을까요. '발 헛딤'입니다. 개인의 실수라는 거죠.
저는 이 대목이 좀 걸렸어요. 걸을 수 없게 만들어놓고, 못 걸었다고 적는 거잖아요.
이게 한 사람 얘기가 아닙니다.
고용노동부가 올해 5월부터 재해조사보고서를 공개하기 시작했어요. 2024년에 일어나서 판결까지 확정된 중대재해들입니다. 서울경제신문이 그중 제조업 사망사고 일곱 건을 들여다봤습니다.
일곱 건 전부, 원인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화성의 플라스틱 공장에서는 성형기 문에 자석이 붙어 있었어요. 문이 열려도 기계가 안 멈추게 하는 자석이었습니다. 그 문 사이에 끼여서 한 사람이 숨졌습니다.
겉으로 보면 근로자가 붙인 걸로 보이죠. 그런데 조사관은 다른 걸 봤습니다.
그 기계는 한번 완전히 세우면 원료가 굳어버립니다. 다시 데우는 데 몇 시간이 걸려요. 그러니까 라인을 멈추면 손해가 납니다.
그 사람에게 라인을 멈출 권한이 있었을까요. 멈춰도 된다는 절차가 있었을까요.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름 2센티미터짜리 흔한 자석 하나로 무력화되는 센서를, 그 공장은 안전장치라고 달아놓고 있었어요.
여기서 조금 뒤집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콘크리트 블록 공장에서는 프로그램 자체가 틀려 있었습니다. 벽돌 한 장이 빠지면, 여섯 줄만 보내야 하는 컨베이어가 최대 열두 줄까지 밀어넣는 오류가 있었어요.
기계가 잘못 움직이고, 사람이 그걸 치우다가, 기계는 '이제 정상이네' 하고 다시 내려옵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실수한 게 아니에요. 기계가 실수하고, 사람이 그 뒤처리를 하다가 죽은 겁니다.
일곱 건을 다 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전부 비정형 작업 중이었어요. 점검, 수리, 오류 조치, 상하차. 매뉴얼에 없는 순간들입니다.
평소에 잘 돌아가는 설비의 안전은, 사실 잘 안 돌아갈 때 드러나는 거죠.
보고서들은 하나같이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조심하라는 교육으로는 못 막는다는 겁니다.
대신 설계를 바꾸라고 했어요. 문이 열리면 전기적으로가 아니라 물리적으로 멈추게 하라고. 정비할 때는 전원을 끄고 아예 자물쇠를 채우라고. 발판 폭은 사람 걸음에 맞추라고.
사람이 실수해도 안 죽는 구조. 그걸 고장 안전, 페일세이프라고 부릅니다.
오늘 하나만 남기고 싶어요.
'부주의'라는 단어가 적혀 있을 때, 그 앞에 뭐가 있었는지 한 번 의심해보는 겁니다. 지붕 위의 91센티미터처럼요.
류현철 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업과 연구자, 노동자가 이 보고서를 볼 수 있어야 한다고요. 애도는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라고요.
보고서는 노동부 홈페이지에 공개돼 있습니다.
같은 뉴스, 네 가지 시선. AILENS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