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30 08:32 · 팟캐스트
가격을 낮추려고 용량을 줄였는데, 단가는 더 올라갔습니다 🧱
트렌드포스 2027년 HBM 가격 예측 공급 부족 속 비싼 신제품 판매 확대 삼성·SK, 엔비디아向 HBM4 경쟁 빅테크는 저렴한 저용량 탑재 검토
스크립트 (본문 텍스트)
같은 뉴스, 네 가지 시선. AILENS입니다.
오늘 이야기는 9월 29일,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가 내놓은 전망 하나에서 출발합니다.
상상해봅시다 — 어느 회사 구매팀 회의실입니다. 담당자가 내년 부품 견적서를 받아 들고 잠깐 말을 멈춥니다. 같은 부품, 같은 수량. 그런데 금액이 두 배가 넘게 적혀 있어요.
숫자를 잘못 본 게 아닙니다. 트렌드포스가 내년 HBM 평균 가격을 올해의 두 배 넘게 볼 거라고 했으니까요.
HBM이라는 게 뭔가 하면요. 메모리 반도체를 위로 층층이 쌓아 올린 겁니다. 아파트처럼요. 옆으로 길게 늘어놓는 대신 위로 쌓아서, AI 칩이 데이터를 훨씬 빨리 주고받을 수 있게 만든 부품이죠.
그러니까 지금 AI 반도체를 만드는 쪽에서는 이게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됩니다. 대체할 게 없어요.
그런데 그 부품 가격이 두 배가 됩니다.
이게 한 회사 구매팀의 고민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어요. HBM을 사는 쪽은 전 세계 빅테크들입니다. 이들이 만드는 게 AI 그래픽 칩이고, 그 칩을 사는 게 데이터센터고, 그 데이터센터가 돌리는 게 우리가 쓰는 AI 서비스들이거든요.
부품 가격이 두 배가 되면 그 위층으로 차례차례 올라갑니다. 어디까지 올라가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죠.
그래서 빅테크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제가 좀 흥미롭게 본 대목이 나와요.
이들이 검토하는 방법이 이겁니다. 쌓는 층수를 줄이자. 열두 층 쌓던 걸 여덟 층으로 낮추자는 거예요. 층이 적으면 당연히 싸지겠죠.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HBM에는 맨 아래층에 베이스 다이라는 게 깔려 있어요. 위층들을 받쳐주고 신호를 정리하는 바닥 판 같은 겁니다. 문제는 층수를 줄여도 이 바닥은 그대로 하나가 필요하다는 점이죠. 12층 아파트든 8층 아파트든 기초공사는 해야 하는 것처럼요.
결과가 어떻게 되냐면요. 용량 한 단위당 따져보면 여덟 층짜리가 열두 층짜리보다 더 비싸집니다. 트렌드포스는 10에서 20퍼센트 정도 높을 거라고 봤어요.
싸게 하려고 줄였는데 단위당으로는 더 비싸지는 겁니다. 그렇죠. 좀 이상하잖아요.
트렌드포스도 그래서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이 방법이 그래픽 칩 가격이 오르는 압력을 조금 눌러주기는 하겠지만, 전체적인 가격 상승 흐름 자체를 되돌리기는 어렵다고요.
저는 이 대목이 좀 걸렸어요.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고, 가장 똑똑한 사람들을 모아놓은 회사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머리를 모아 찾아낸 대응책이, 결국 오르는 속도를 조금 늦추는 정도라는 거예요. 방향을 바꾸지는 못하고요.
그만큼 물건이 없다는 뜻입니다. 만드는 쪽에서도 지금 생산을 빠르게 늘리고 있어요. 삼성전자는 이번 3분기 신형 HBM 매출을 직전 분기의 세 배 이상으로 늘리겠다고 했고, SK하이닉스도 수율을 끌어올려 본격적인 증산에 들어간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도 품귀가 당분간 이어진다고 봅니다. 늘리는 속도보다 필요해지는 속도가 더 빠른 거죠.
이게 지금 AI라는 게 어디쯤 와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부품 값이 두 배가 되는데도, 아무도 덜 쓰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어떻게 덜 아프게 낼지를 궁리하죠.
오늘 하나만 남기자면 이겁니다.
가격이 오르는데도 줄이겠다는 말이 안 나오면, 그건 아직 성장 중이라는 신호입니다. 반대로 어느 시점에 "그럼 안 사겠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 그때가 흐름이 바뀌는 순간이겠죠.
지금은 아직 그 말이 안 나왔습니다.
참고로 오늘 나온 수치들은 트렌드포스라는 시장조사업체의 전망이고요. 전망은 전망일 뿐,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은 같이 기억해두시면 좋겠습니다.
같은 뉴스, 네 가지 시선. AILENS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