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바이오팜, 1조 원짜리 뇌전증 신약 후보를 사온 이유 세노바메이트의 미국 핵심 물질특허는 2032년 10월 만료됩니다. 그 전에 인도 제네릭 업체 제나라파마가 특허 만료를 기다리지 않고 조기 시장 진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시계는 이미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SK바이오팜이 최대 1조 1000억 원을 들여 후기 임상 단계의 뇌전증 신약 후보물질을 사온 것은, 이 흐름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SK바이오팜은 아일랜드 바이오헤이븐 바이오사이언스와 뇌전증 신약 후보물질 '오파칼림(BHV-7000)' 도입 계약을 2025년 4월 26일 체결했습니다. 계약 총액은 최대 7억 9500만 달러, 약 1조 995억 원입니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이 해외에서 신약 후보물질을 사온 계약 중 역대 최대 규모입니다. 계약금 구조를 들여다보면 규모가 더 뚜렷해집니다. 반환 의무가 없는 선급금이 4억 달러, 약 5532억 원입니다. 전체 계약액의 절반을 넘는 금액을 개발 결과와 무관하게 먼저 지급합니다. 나머지 3억 9500만 달러는 개발·허가 단계별 마일스톤으로, 출시 이후에는 순매출에 연동한 로열티도 별도로 냅니다.
SK바이오팜이 외부에서 신약 후보물질을 들여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2024년에는 풀라이프 테크놀로지스에서 방사성의약품 후보물질 SKL35501을 최대 약 7921억 원에, 지난해에는 미국 위스콘신대 기술이전기관 WARF에서 SKL37321을 약 8425억 원 규모로 도입했습니다. 두 건 모두 전임상 단계 항암 자산이었습니다. 동물 실험 수준에서 임상 진입 가능성을 보고 사온 것입니다. 오파칼림은 다릅니다. 성인 부분발작 환자를 대상으로 글로벌 임상 2·3상이 현재 진행 중인 후기 자산입니다. 올해 말 첫 주요 지표 결과를 확보하고, 2028년 두 번째 결과 발표를 거쳐 이르면 2029년 미국 출시가 목표입니다. 전임상 단계 자산보다 실패 가능성이 낮고, 그만큼 가격도 높습니다.
오파칼림의 작동 방식은 세노바메이트와 다릅니다. 세노바메이트가 나트륨 채널을 조절해 발작을 억제하는 반면, 오파칼림은 Kv7.2/7.3 칼륨채널을 선택적으로 활성화해 뇌 신경세포의 흥분성을 낮춥니다. 같은 뇌전증을 다루지만 기전이 다릅니다. SK바이오팜은 세노바메이트가 높은 약효로 중증 환자에서 경쟁력을 가졌다면, 오파칼림은 상대적으로 우수한 안전성과 내약성이 강점이라고 설명합니다. 중증 환자에게는 세노바메이트, 부작용에 민감한 환자에게는 오파칼림을 쓸 수 있는 구조입니다. 병용 가능성도 검토 중입니다. 여기에 인프라 구조가 더해집니다. SK바이오팜은 미국 자회사 SK라이프사이언스를 통해 150명 이상의 현지 전담 영업 인력과 주요 뇌전증 센터·신경과 전문의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 조직이 세노바메이트를 팔고 있습니다. 오파칼림이 출시되면 별도의 영업 조직을 새로 꾸리지 않고 같은 채널로 함께 팔 수 있습니다.
세노바메이트의 미국 핵심 물질특허는 2032년 10월 만료됩니다. 이후에는 복제약이 같은 성분으로 더 낮은 가격에 팔릴 수 있습니다. 후속 사용방법 특허가 2039년까지 남아 있지만 제나라파마는 물질특허와 후속 특허 모두에 대해 만료 전 조기 진입을 시도하고 있어 특허 분쟁이 진행 중입니다. 오파칼림이 목표대로 2029년 출시되면 물질특허 만료 3년 전부터 두 번째 매출원이 생깁니다. 세노바메이트 매출이 줄어드는 시점과 오파칼림 매출이 본격화되는 시점을 맞물리게 하는 구조입니다. 이번 계약에는 오파칼림뿐 아니라 같은 칼륨채널 기전을 활용한 후속 신약을 발굴할 수 있는 'Kv7 디스커버리 플랫폼'과 관련 화합물 권리도 포함됐습니다.
이동훈 SK바이오팜 사장은 "두 개의 블록버스터를 미국에서 직접 판매하는 회사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습니다. 유창호 전략부문장은 "세노바메이트의 약효와 오파칼림의 내약성·안전성을 바탕으로 향후 병용 가능성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오파칼림은 아직 임상 중입니다. 올해 말 첫 주요 지표 결과가 나와야 유효성이 확인됩니다. 2029년 출시는 임상이 목표대로 진행됐을 때의 시나리오입니다. 4억 달러의 계약금은 결과와 무관하게 지급됩니다.
오파칼림이 2029년에 출시되려면 올해 말 나오는 임상 2·3상 첫 번째 주요 지표가 관건입니다. SK바이오팜은 이 결과를 공시하게 됩니다. 세노바메이트 특허 분쟁 현황은 미국 FDA 제네릭 허가 신청 목록(오렌지북)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1조 원을 쓴 이유는 결국 2032년입니다. 그 시계에 맞춰 오파칼림의 시계도 돌아가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