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로봇·드론에 꽂는 통신장비, 사업마다 규격이 다르다 방산업체 A사는 올해 상반기와 하반기에 걸쳐 같은 전투실험 과제를 수행했습니다. 그런데 하반기 실험에서 요구하는 통신 규격이 바뀌면서, 로봇에 달았던 통신장비를 통째로 교체해야 했습니다. 주파수와 보안 수준이 달라졌고, 새 장비를 확보한 뒤 로봇과 연동하는 작업도 처음부터 다시 했습니다. 같은 과제의 후속 실험이었는데도 벌어진 일입니다. 이 회사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현재 군 로봇·드론 등 무인체계에 공통으로 적용할 수 있는 통신·보안 모듈 규격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군과 사업마다 요구하는 주파수, 통신 방식, 보안 수준이 달라 기업들은 건건이 맞춤 대응을 해야 합니다. 암호모듈의 안전성을 검증하는 암호모듈검증제도(K-CMVP)가 있지만, 이것이 국방 사업 전반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의무 기준이나 표준 규격은 아닙니다. 방산업계는 규격이 확정되기 전에 투자했다가 나중에 군의 요구와 맞지 않으면 연구개발비와 시간이 그대로 손실이 된다고 말합니다.
민간에서 축적된 드론·통신 기술이 국방 부품으로 연계되는 비율은 낮습니다. 국방기술진흥연구소의 '2025 국방활용가능 민간보유기술 조사서'에 따르면, 국방 활용 가능성이 있다고 분류된 민간 기술 168건 가운데 통신체계·소형 및 정찰용 드론 분야의 부품국산화 사업과 연계할 수 있는 기술은 18건, 전체의 10.7%에 그쳤습니다. 범위를 전체 국방 분야로 넓혀도 168건 중 100건은 부품국산화 사업과 연계되지 않았습니다. 민간 기술이 쌓여도 군에서 쓸 수 있는 형태로 전환되는 경로가 좁다는 뜻입니다.
국내에서 국산 군용 통신장비 개발이 더딘 사이, 실제 무인체계 개발·실증 현장에서는 외산 장비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미군이 채택한 실버스테크놀로지스의 '스트림캐스터'와 퍼시스턴트시스템스의 'MPU5'가 주로 쓰입니다. 성능과 보안성이 검증된 장비를 바로 도입할 수 있다는 이점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의존이 고착되면 국내 기업의 통신·보안 기술 축적과 산업 생태계 형성이 어려워진다는 우려가 방산업계 안에서 나옵니다.
군이 소형 드론을 대규모로 보급하기 시작하면서 이 문제는 더 급해졌습니다. 국방부는 '50만 드론전사' 계획에 따라 국산 상용드론의 대규모 도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교육·훈련에 활용되는 소형 드론의 기체 가격은 수백만 원 수준이고, 교체 주기도 짧습니다. 그런데 기존 군용 통신장비는 대당 수천만 원에 달합니다. 기체 한 대에 통신장비 값이 몇 배씩 얹히는 구조로는 대규모 보급이 현실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한 드론업체 대표는 "기업 입장에서는 지금 통신장비를 만들어도 이후에 규격이 정해지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며 "군이 먼저 규격을 제시해야 기업도 그에 맞춰 개발에 투자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최기일 상지대 군사학과 교수 겸 한국방위사업연구소장은 "K-CMVP 등 기존 보안 기준을 토대로 무인체계에 공통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을 구체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기업의 개발 부담을 최소화하도록 단계별로 적용하되, 기본적인 통신·보안 가이드라인은 군 차원에서 통일된 기준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습니다. 군도 대응에 나서고 있습니다. 국방부는 올해 '유·무인복합체계 공통데이터링크' 핵심기술 연구개발 사업에 착수할 계획입니다. 국방부 관계자는 "공통데이터링크 표준과 보안을 확보한 통신시스템 기술을 개발하고, 전용 주파수도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군이 로봇·드론 전력을 빠르게 늘리는 방향은 정해졌습니다. 하지만 그 장비들이 서로 다른 통신 규격으로 각각 작동한다면, 지금 A사가 겪은 것처럼 사업마다 처음부터 다시 맞춰야 하는 비용이 계속 생깁니다. 국방부가 추진하는 공통데이터링크 연구개발 사업이 실제로 어떤 규격을 제시하느냐에 따라, 국내 방산·드론 기업이 선제 투자에 나설 수 있는지가 결정됩니다. 로봇에서 통신장비를 다시 뜯어내던 A사의 장면은, 규격이 없을 때 드는 비용이 어느 쪽에 얼마나 쌓이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