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공장 안에서 엔비디아 GPU가 일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말 엔비디아 소프트웨어를 도입했습니다. 목적은 반도체 칩 생산이 아닙니다. 반도체를 만드는 공정 자체를 빠르게 개발하기 위해서입니다. 노광 시뮬레이션 속도가 기존보다 최대 20배 빨라졌습니다. 이 속도 차이가 공정 개발 일정을 얼마나 앞당기는지, 엔비디아는 자사 2분기 실적 발표 자리에서 삼성전자를 대표 사례로 직접 언급했습니다.
2025년 5월 26일(현지시간), 엔비디아 2분기 콘퍼런스 콜에서 콜레트 크레스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삼성전자를 직접 언급했습니다. 발언 내용은 이렇습니다. "삼성전자는 컴퓨테이셔널 리소그래피 분야에서 최대 20배 높은 성능을 달성하기 위해 엔비디아의 큐리쏘(cuLitho)를 사용하고 있다." 엔비디아가 자사 GPU의 제조업 확산 사례로 삼성전자를 공개적으로 지목한 것은, 양사 관계가 단순한 부품 공급을 넘었다는 신호로 업계는 읽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에 HBM(고대역폭 메모리)을 공급하는 동시에, 엔비디아 GPU를 자사 공정 개발에 활용하는 구조입니다.
반도체 회로는 빛으로 웨이퍼에 새깁니다. 문제는 빛이 회절하는 성질이 있다는 점입니다. 설계한 회로 모양 그대로 웨이퍼에 옮겨지지 않고 패턴이 미세하게 달라집니다. 이를 보정하려면 포토마스크(반도체 회로 형상을 담은 원판)의 회로 모양을 미리 조금씩 틀어놓아야 합니다. 최적의 보정값을 찾기 위해 고성능 컴퓨터로 시뮬레이션을 수백, 수천 번 반복합니다. 이 과정이 공정 개발에서 병목이 됩니다. 계산에 시간이 걸릴수록 엔지니어가 패턴을 수정하고 검증하는 주기가 늦어지고, 공정 완성 일정도 밀립니다. 큐리쏘는 이 시뮬레이션을 GPU의 병렬 연산 능력으로 대폭 가속하는 소프트웨어입니다. 삼성전자가 이를 도입한 뒤 시뮬레이션 속도가 최대 20배 빨라졌습니다.
GPU 가속이 당장의 병목을 줄였다면, 삼성전자는 더 먼 문제도 보고 있습니다. 반도체 회로선폭이 좁아질수록 시뮬레이션 계산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현재 기술로는 GPU를 아무리 써도 미래 초미세공정에서 필요한 계산량을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IT 서비스 계열사 삼성SDS와 함께 양자컴퓨팅을 활용한 노광 시뮬레이션 기술을 실증하고 있습니다. 양자컴퓨팅은 특정 유형의 최적화 계산에서 기존 컴퓨터보다 압도적으로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다고 알려진 방식입니다. 지금 당장은 GPU, 미래 초미세공정에는 양자컴퓨팅을 함께 연구하는 투 트랙 전략입니다. 현재 양자컴퓨팅 활용은 실증 단계입니다. 실제 공정에 적용 중이라는 내용은 원문에 없습니다.
엔비디아가 삼성전자 사례를 공개한 배경에는 자사 사업 확장 전략이 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엔비디아는 AI 응용처가 언어 중심 연산을 넘어 시각 정보와 현장 데이터를 다루는 제조 AI로 확장되기를 원하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즉, 엔비디아 입장에서 삼성전자는 데이터센터 고객이면서 동시에 제조 AI 확산의 실증 파트너입니다. 이 관계자는 "대규모 제조 인프라를 보유한 삼성과 LG, 현대차 등 국내 기업들과 관련 실증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삼성전자 역시 메모리 공급사이자 기술 협력사라는 이중 위치를 확보하게 됩니다. 양사 모두에게 공급·구매 관계 외의 연결 고리가 생기는 구조입니다.
지금까지 반도체 공장에서 AI는 주로 불량 검출, 수율 예측 같은 사후 분석에 쓰였습니다. 큐리쏘 사례는 조금 다릅니다. 공정을 설계하는 단계, 즉 회로 패턴을 확정하기 전 시뮬레이션 과정에 GPU 연산을 직접 투입합니다. 제조 결과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공정 개발의 속도 자체를 바꾸는 방식입니다. 엔비디아가 실적 발표에서 강조한 것도 이 지점입니다. GPU가 서버실을 벗어나 제조 공정 설계 단계로 들어오고 있다는 흐름입니다. 삼성전자는 그 흐름 위에서 공급자와 사용자 두 역할을 동시에 맡고 있습니다.
이번 발표에서 확인된 수치는 노광 시뮬레이션 속도 '최대 20배' 향상입니다. 이 수치는 엔비디아 CFO가 공개 콘퍼런스 콜에서 직접 밝힌 것이지만, '최대'라는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모든 시뮬레이션 작업에서 20배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특정 조건에서의 최대치입니다. 공정 개발 기간이 실제로 얼마나 단축됐는지, 수율이나 제조 원가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는 아직 공개된 정보가 없습니다.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에 메모리를 납품하는 동시에, 엔비디아 소프트웨어로 자사 공장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는 구조 변화가 이번 발표의 핵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