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이 미국으로 가고 있다 올 8월 20일 기준, 퇴직연금 고객 8만 5172명이 가장 많이 산 종목은 미국 S&P500을 따르는 ETF였습니다. 894억 원어치입니다. 순매수 상위 5개 중 4개가 미국 지수형 ETF였고, 7월에도 같은 흐름이었습니다. 이것은 한 달의 일탈이 아닙니다.
한 대형 증권사가 서울경제신문에 제공한 퇴직연금 고객 순매수 자료에 따르면, 8월 상위 5개 종목 중 80%인 4개가 미국 지수형 ETF였습니다. 1위 TIGER 미국S&P500(894억 원), 2위 TIGER 미국나스닥100(572억 원), 3위 KODEX 미국나스닥100(343억 원), 4위 KODEX 미국S&P500(263억 원) 순이었습니다. 유일한 국내 주식형 ETF인 KODEX AI반도체TOP2플러스는 188억 원으로 5위에 그쳤습니다.
7월 순매수 상위 5개 중 3개가 미국 지수형이었습니다. 1위는 역시 TIGER 미국S&P500으로 1181억 원이었고, TIGER 미국나스닥100(771억 원)·KODEX 미국나스닥100(430억 원)이 뒤를 이었습니다. 국내 지수형(KODEX 200·517억 원)과 국내 반도체(TIGER 반도체TOP10·537억 원)가 일부 포함됐지만, 미국 지수형 비중이 더 컸습니다. 같은 1위 종목이 두 달 연속 유지됐다는 점이 단순한 일시 쏠림과 구분되는 지점입니다.
퇴직연금은 DC형(확정기여형)·IRP(개인형 퇴직연금) 모두 운용 지시를 가입자가 직접 내립니다. 그리고 수십 년 단위의 장기 투자 상품입니다. 단기 시세 차익보다 장기 성장성을 기준으로 자산을 배분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8월에 코스피가 한 달 이상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이, S&P500은 같은 기간 약 3%대 상승률을 유지했습니다. 장기 투자 자금 입장에서는 방향성이 더 뚜렷한 시장을 선택한 셈입니다.
한 가지 짚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올해 8월 기준 누적 수익률만 보면, 국내 상품이 미국 지수형보다 앞섰습니다. KODEX AI반도체TOP2플러스의 누적 수익률은 107.49%였습니다. 반면 미국 S&P500·나스닥100 ETF의 같은 기간 상승률은 각각 평균 8%대, 12%대였습니다. 수익률 자체가 낮아서 미국으로 이동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변동 폭이 커지자 수익률보다 안정성을 우선한 선택으로 해석됩니다.
증권사 관계자는 "국내 증시가 단기 조정을 받으면서 투자자들이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습니다. 또 "반도체 등 국내 주도 업종의 단기 변동성이 커지자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성장성이 기대되는 미국 자산으로 투자 수요가 이동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올 상반기 코스피 상승세에 국내 ETF를 담았던 투자자들이 8월 들어 다시 미국 지수형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관찰됩니다.
DC형·IRP 가입자는 운용 지시를 직접 바꿀 수 있습니다. ETF 교체 시 퇴직연금 계좌 내 매매이므로 매매차익에 대한 과세가 운용 중에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원리금비보장 상품 편입 한도(DC·IRP 기준 최대 70%)가 적용된다는 점을 확인하는 것이 첫 번째 순서입니다. 본인 계좌의 현재 편입 비중과 한도는 각 금융사 퇴직연금 앱 또는 고용노동부 퇴직연금 통합공시(pension.fss.or.kr)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8월, 퇴직연금 자금 가운데 미국 지수를 향한 894억 원은 이미 움직였습니다. 내 계좌는 어떤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지 살펴볼 시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