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바이오팜이 연간 170억을 쓰는 이유 신약 하나가 시장에 나오기까지 평균 10년이 넘게 걸립니다. 후보물질 수천 개 중 실제로 허가를 받는 건 한 자릿수에 불과합니다. SK바이오팜은 그 병목을 AI 연산력으로 좁히겠다고 나섰습니다. 이번이 처음 시도하는 방향은 아니지만, 규모는 달라졌습니다.
SK바이오팜은 2025년 6월 2일, 엔비디아의 최신 AI 가속기 'B200' 128장을 연간 구독 형태로 도입했다고 밝혔습니다. 계약 규모는 연간 약 170억 원입니다. B200은 엔비디아의 블랙웰 아키텍처 기반 제품으로, 대규모 AI 모델 학습과 추론에 쓰이는 고성능 연산 칩입니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이 구독형으로 이 규모의 AI 가속기를 확보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SK바이오팜이 B200 128장을 확보한 시점, 해외 대형 제약사들은 이미 더 큰 규모의 AI 인프라를 구축한 상태였습니다. 일라이 릴리는 2025년 2월 블랙웰 울트라 GPU 1,016개를 탑재한 AI 슈퍼컴퓨터 '릴리팟'을 완성했습니다. 로슈는 2025년 3월 블랙웰 GPU 2,176개를 추가 배치해 총 3,500개 이상의 블랙웰 인프라를 갖췄습니다. SK바이오팜의 128장은 로슈의 27분의 1 수준입니다. 출발 시점과 규모 모두 격차가 있습니다.
SK바이오팜은 이번 연산 자원을 'TR-AX', 즉 '중개연구의 AI 전환' 프로그램에 집중 투입할 계획입니다. 중개연구는 동물실험 등 비임상 단계에서 확인한 결과를 사람 대상 임상 연구로 연결하는 과정입니다. 신약 개발에서 실패율이 가장 높은 구간 중 하나입니다. SK바이오팜은 국내에서 후보물질 발굴과 비임상 연구를 하고, 미국에서 임상과 허가를 진행하는 체계를 운영해왔습니다. 뇌전증 신약 세노바메이트가 이 경로를 통해 미국 시장에 나온 대표 사례입니다. AI 인프라는 이 국내 단계의 병목을 줄이는 데 쓰이게 됩니다.
연산 자원 확보가 신약 개발 단축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SK바이오팜은 AI 인프라 도입이 "신약 개발 기간을 단축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습니다. 확정이 아닌 전망입니다. 실제로 얼마나 줄어드는지, 어느 단계에서 효과가 나타나는지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글로벌 제약사들도 AI 인프라 투자를 늘리고 있지만, AI가 임상 성공률을 높였다는 공개된 데이터는 아직 제한적입니다. 인프라 확보는 시작이지, 결과가 아닙니다.
이동훈 SK바이오팜 사장은 "글로벌 수준의 B200 인프라를 기반으로 신약 개발 전 과정에서 AI 활용을 극대화해 연구개발의 속도와 효율을 높여 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SK바이오팜은 사내 전용 거대언어모델(LLM)도 별도로 구축할 계획입니다. LLM은 대규모 텍스트 데이터를 학습한 AI 언어 모델로, 후보물질 발굴부터 연구 의사결정까지 내부 업무 전반에 활용할 방침입니다. 이번 B200 인프라는 SK텔레콤이 구축한 국내 최초 B200 기반 데이터센터 클러스터 '해인'을 통해 도입됐습니다.
이번 계약의 핵심은 '소유'가 아닌 '구독'이라는 점입니다. SK바이오팜은 장비를 직접 사지 않고, 연간 170억 원을 내고 SK텔레콤 데이터센터의 연산 자원을 빌려 씁니다. 초기 구축 비용 없이 최신 인프라를 유연하게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계약이 끝나면 자산이 남지 않는 구조입니다. 국내 제약사가 이 방식으로 대규모 AI 자원을 확보한 것이 처음인 만큼, 후속 계약 여부와 실제 연구 성과가 이 모델의 유효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것입니다. 170억짜리 질문의 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