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전국에서 종합건설업체 641곳이 문을 닫았습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 484곳보다 32.4% 늘어난 숫자입니다. 폐업이 한두 곳의 사정이라면 경영 실패로 읽겠지만, 1년 만에 157곳이 더 늘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대한주택건설협회 관계자는 "주택 건설 업계의 '돈맥경화'가 풀리지 않으면 주택 공급난이 장기화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돈맥경화의 시작점은 2022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 4년 만에 3분의 1이 사라졌다
27일 대한주택건설협회에 따르면 협회 회원사의 주택 공급(임대 제외)은 레고랜드 사태가 발생한 2022년 9월 누적 7만 7854가구에서 올해 9월 누적 5만 5019가구로 29.3% 줄었습니다. 2만 2835가구가 사라진 셈입니다. 협회 회원사는 대부분 중소·중견 건설사입니다. 대형 건설사가 수도권 대단지를 맡는 동안, 지방과 중소 도시의 주택 공급을 실제로 담당해온 쪽입니다. 그 3분의 1이 4년 사이에 없어졌습니다.
◾ 시장 전체보다 두 배 가까이 빠졌다
기간을 레고랜드 사태 이전까지 넓히면 낙폭이 더 선명해집니다. 중소·중견 건설사의 주택 공급 실적은 2021년 16만 9000가구에서 지난해 6만 9000가구로 58.8% 감소했습니다. 같은 기간 전국 아파트 분양 물량은 어땠을까요. 부동산114 집계로는 29만 7793가구에서 19만 5553가구로 34.3% 줄었습니다. 시장 전체가 3분의 1 빠지는 동안 중소·중견사는 그 두 배에 가까운 속도로 빠진 것입니다. 결과는 비중 변화로 나타났습니다. 전체 분양에서 중소·중견 건설사가 차지하는 몫은 2021년 약 57%에서 지난해 35.7%로 20%포인트 이상 쪼그라들었습니다. 절반을 넘겼던 자리가 3분의 1 남짓으로 내려앉았습니다.
◾ 돈이 줄기만 한 게 아니라, 한쪽으로 쏠렸다
원인은 두 겹입니다. 첫째, 신규 PF 공급 자체가 위축됐습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은 아직 짓지 않은 건물의 사업성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방식입니다. 2022년 9월 레고랜드 사태로 이 시장이 얼어붙은 뒤 금융권의 위험 회피 경향이 짙어졌습니다. 둘째, 그나마 풀린 자금이 대형 건설사의 수도권 우량 사업장에만 쏠렸습니다. 같은 PF라도 누가 어디에 짓느냐에 따라 돈이 갈리는 구조입니다. 특히 막힌 지점은 사업의 첫 단계입니다. 주건협 관계자는 "레고랜드 사태 이후 금융기관들이 PF에 극도로 보수적인 데다 지방은 초기 단계인 브리지론부터 완전히 막힌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브리지론은 본격적인 PF 대출을 받기 전에 땅을 사려고 단기로 빌리는 돈입니다. 여기서 막히면 토지 확보 단계에서 사업이 멈춥니다.
◾ 지원책도 나왔고 물량도 늘었는데
정부는 손을 쓰지 않은 게 아닙니다. 8·13 주택 공급 대책의 일환으로 중소·중견사 PF 특별보증 확대 등 지원책을 내놓았습니다. 정부가 보증을 서서 금융기관이 돈을 빌려주기 쉽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숫자도 일단 반등했습니다. 올 들어 9월까지 중소·중견사의 공급 물량은 전년 동기 대비 19%가량 늘었습니다. 문제는 그 안을 들여다볼 때입니다. 협회는 이 증가분의 대부분이 과거 인허가를 받아둔 물량의 '밀어내기' 분양이라고 설명합니다. 새로 시작한 사업이 아니라, 이미 허가받아 쌓여 있던 것을 털어낸 결과라는 뜻입니다. 순공급 확대와는 거리가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 폐업 숫자가 남는다
앞으로 공급 확대가 쉽지 않다는 평가의 근거는 두 가지입니다. 신규 PF의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고, 지방 부동산 침체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돈이 갈리는 구조와 분양이 안 되는 시장이 동시에 버티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 사이 빠져나가는 쪽의 숫자는 계속 쌓입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전국 종합건설업체 641곳이 폐업 신고를 했습니다. 한 번 문을 닫은 건설사는 시장이 풀렸다고 곧바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 한 가지만 기억한다면
지금 지방에서 나오는 분양 물량 상당수는 새로 기획된 사업이 아니라, 몇 년 전 인허가를 받아두고 미뤄왔던 것을 털어내는 물량일 수 있습니다. 분양 공고의 숫자만으로 "공급이 회복됐다"고 읽기 어려운 국면입니다. 지방에서 아파트 청약을 준비한다면 인허가 시점과 시공사의 사업 이력을 함께 확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택 공급과 관련한 정책 문의는 국토교통부, 중소·중견 건설사의 PF 보증 관련 사항은 대한주택건설협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4년 전 강원도의 놀이공원에서 시작된 채권시장 사고가, 오늘 641곳의 폐업 신고서로 남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