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과 뉴욕의 펀드매니저들은 한국 시간 오전 7시에서 9시 사이, 역외 외환 스왑시장에서 원화를 급하게 빌렸습니다. 한국 증시 개장 직전에 결제금을 맞춰야 했기 때문입니다. 비싼 단기 금리를 물어도 별 도리가 없었습니다. 이 관행이 이달 말부터 바뀝니다. 현금 대신 국채와 주식을 맡길 수 있게 됐습니다.
◾ 국채 100억을 맡기면 98억으로 인정된다
27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이달 말 도입하는 결제촉진대금 증권 납부 제도에서 국채는 최대 98%의 담보인정비율이 적용됩니다. 국채 100억 원을 보유하고 있다면 98억 원까지 담보로 쓸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예탁원 관계자는 "국채, 통화안정증권 등을 대상으로 잔여 만기, 종류, 신용평가등급 등을 종합 고려해 담보인정비율을 적용할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주식은 코스피 대형주가 담보 대상입니다.
◾ 지금까지는 현금만 받았다
결제촉진대금은 증권사가 당일 거래 후 최종 자금 정산 전에 주식을 먼저 넘겨받는 대가로 맡기는 보증금입니다. 문제는 이걸 오직 현금으로만 예치해야 했다는 점입니다. 국내 증권사는 매일 수천억 원의 현금이 묶여 자금 운용에 제약을 받았습니다. 외국계 기관은 사정이 더 나빴습니다. 시차 때문에 한국 개장 직전 새벽에 원화를 단기 차입해야 했고, 이 비용이 한국 투자를 꺼리게 만드는 장벽으로 지목돼 왔습니다.
◾ 주가가 장중에 빠지면 어떻게 되나
담보로 맡긴 주식 값이 장중에 떨어지면 보증금도 함께 줄어듭니다. 결제 불이행 위험이 생기는 지점입니다. 예탁원은 이를 막기 위해 매 결제일 실시간 담보 재평가와 추가 담보 납부, 즉 마진콜 절차를 함께 가동합니다. 주식 담보인정비율은 위기 상황의 최대손실예상액 모델로 산출해 매일 다시 계산합니다. 고정된 비율을 쓰지 않고 가변 적용하는 이유입니다.
◾ 들어올 예정인 주식도 담보가 된다
다음 달부터는 장내 수령예정증권 담보 인정 제도도 도입됩니다. 결제 당일 한국거래소 장내 결제를 통해 들어올 예정인 주식 자체를 담보로 인정하는 방식입니다. 별도 사전 담보 없이도 주식을 먼저 넘겨받는 선인수가 허용됩니다. 예탁원은 두 제도를 합쳐 기관의 현금 유동성 부담이 기존 대비 50% 이상 줄어들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 아직 남아있는 한도
증권사가 결제대금을 전액 사전 납부하지 않고도 거래를 진행할 수 있는 일중 외상 한도가 있습니다. 일중 순채무한도, 즉 신용한도입니다. 현재 회원사당 2,000억 원으로 묶여 있습니다. 예탁원은 금융위원회, 한국거래소, 한국증권금융 등과 함께 이 한도를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입니다. 증권가에서는 새벽 원화 조달 비용과 결제 한도 제약이 함께 풀리면 외국계 퀀트 펀드와 고빈도 매매, 지수 차익거래 같은 고회전율 자금 유입이 수월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 한 가지만 기억한다면
이번 변화는 개인 투자자가 직접 신청하거나 신경 쓸 절차가 아닙니다. 다만 외국계 기관이 한국 증시 진입의 최대 장벽으로 꼽아온 사전 예치 관행이 완화된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합니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선진국 지수 편입 논의에서 이 관행은 오랫동안 감점 요인이었습니다. 증권사 관계자는 "외국계 기관은 매일 수조 원의 현금을 묶어둬야 했던 결제 관행 탓에 환차손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어 한국 투자를 꺼리는 일도 잦았다"며 "거래 마찰비용이 대폭 줄어 증시 수급과 회전율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새벽에 원화를 빌리던 그 시간이, 이제는 필요 없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