팹을 짓고도 전기가 없어 못 돌리는 상황이 현실이 됐습니다 반도체 팹과 데이터센터가 완공돼도 전기와 물이 부족해 가동이 어렵다는 말이 업계 고위 관계자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투자 결정 이후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이미 닥친 일입니다. 정부가 한국전력공사와 한국수자원공사에 직접 출자하겠다고 나선 것은 이 위기감에서 시작됐습니다.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에 속도를 내면서, 전기와 물을 공급하는 기반 시설이 따라가지 못하면 투자 전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확정된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한전은 2038년까지 전국에 3855㎞ 길이의 송전망 70개 노선을 새로 깔아야 합니다. 이 공사에만 72조 8000억 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됩니다. 배전망 개선 비용 10조 2000억 원까지 더하면 향후 십수 년간 80조 원이 넘는 돈이 들어갑니다. 여기에 호남 반도체 팹을 포함한 3대 메가 프로젝트와 U자형 초고압직류송전(HVDC)망, 즉 직류 고압 전류로 장거리를 송전하는 방식의 망 구축까지 더해지면 비용은 더 늘어납니다.
문제는 한전이 이 투자를 감당할 재무 상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올해 상반기 한전의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4조 9127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6% 줄었습니다. 중동 전쟁 여파로 연료 구입 비용이 8.8% 오른 것이 직접적인 원인입니다. 6월 말 기준 부채 총액은 210조 7000억 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5조 원 넘게 늘었습니다. 하루 평균 이자 비용만 115억 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구조에서는 대규모 신규 투자에 나서기가 어렵습니다. 정부 출자로 자본금이 늘어나면 차입 여력이 개선될 수 있다고 당정은 보고 있습니다.
이번 출자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한전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1989년 한전 상장 과정에서 3조 원의 납입자본금이 생긴 것을 제외하면, 정부가 한전에 현금을 직접 출자한 사례는 사실상 없습니다. 가장 최근 사례는 2011년 5월로, 전방 군부대 전기 공급 선로를 인수하는 대가로 약 106억 원어치의 신주를 발행한 것이었습니다. 현금 출자가 아닌 현물 방식이었습니다. 이번에 정부가 직접 현금을 넣는 방식을 택한다면 수십 년 만의 선례가 됩니다. 출자 규모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전력망 건설을 앞당기기 위한 공법 개선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기존 2회선 선로를 4회선으로 확장하는 방식을 활용해 새로 지어야 할 고압 송전탑 수요를 40% 가까이 줄이겠다는 계획입니다. 민가가 밀집한 구간에는 지중화, 즉 땅속에 선로를 묻는 공법을 우선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물 공급을 담당하는 한국수자원공사에 대한 출자도 함께 추진됩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나주호에서 용수를 공급받던 농업 지역의 계획을 새로 짜고, 확보된 여유 용수를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에 투입하는 방안도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를 받았습니다. 공법과 행정 절차 두 축에서 동시에 속도를 내는 구조입니다.
반도체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25일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재로서는 팹이나 데이터센터를 지어도 전기와 물이 부족해 가동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물량보다 더 중요한 게 속도입니다." 이재명 대통령도 같은 날 "늘어난 재정을 미래에 더 많은 열매를 수확하기 위한 생산적 재정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눈앞의 재정 수치 관리에 매몰되는 우를 범할 때가 아니다" 라고 강조했습니다. 출자 규모를 아직 밝히지 않은 상황에서, 얼마를 어떤 조건으로 넣을지가 이후 논의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의 한전·수자원공사 출자는 수십 년 만의 선례입니다. 출자 규모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고, 구체적인 조건과 시기는 추후 발표될 예정입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농림축산식품부 등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반도체 클러스터 기반 시설 조성 관련 총 26건의 사업을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대상으로 의결했습니다. 산업부는 용인·서남권·충청권 반도체 클러스터 기반 시설 조성을 위해 2027년부터 2030년 사이 총 6조 원 규모의 출연 사업을 추진할 예정입니다. 팹을 짓고도 전기가 없어 못 돌리는 상황—이 한 문장이 지금 정부가 왜 수십 년 만에 공기업에 직접 돈을 넣으려 하는지를 설명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