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간 뚫리지 않던 암의 스위치가 열렸습니다 췌장암 2차 치료를 받는 환자의 중앙 생존기간은 기존 화학요법 기준으로 수개월 수준입니다. 임상 3상에서 라손큐는 그 기간을 6.5개월 더 늘렸습니다. 이 수치가 주목받는 이유는 숫자 자체보다 원리에 있습니다. RAS라는 단백질은 40년 넘게 약물이 달라붙을 자리를 내주지 않았습니다. 이번 허가는 그 벽에 처음으로 균열이 생겼다는 신호입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025년 5월 26일(현지시간) 레볼루션 메디슨의 전이성 췌장암 치료제 '라손큐'를 허가했습니다. 1차 치료 이후에도 암이 진행된 전이성 췌장암 성인 환자가 대상입니다. FDA는 라손큐를 전이성 췌장암 대상 '퍼스트인클래스(First-in-class)' 표적치료제로 평가했습니다. 퍼스트인클래스란 해당 작용 기전으로는 세계 최초로 허가된 치료제를 뜻합니다. 핵심은 '범(汎)RAS 억제'입니다. 특정 변이 하나가 아니라 다양한 RAS 변이를 동시에 억제하는 치료제가 허가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RAS는 세포 증식을 조절하는 단백질입니다. 정상일 때는 세포 성장을 켜고 끄는 스위치 역할을 합니다. 변이가 생기면 스위치가 꺼지지 않고, 세포가 멈추지 않고 증식하면서 암이 됩니다. RAS 변이는 췌장암의 90% 이상, 대장암의 약 50%, 폐암의 약 30%에서 발견됩니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표적치료제를 만들기 어려웠던 이유는 구조에 있습니다. RAS 단백질은 표면이 매끄럽고 크기가 작아 약물이 결합할 부위를 찾기 어렵습니다. 그 결과 개발은 특정 변이만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방향에 머물렀고, 범용 억제는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었습니다.
레볼루션 메디슨은 우회 전략을 택했습니다. 라손큐의 주성분인 다락손라십이 체내에서 '사이클로필린 A'라는 단백질과 먼저 결합하도록 설계했습니다. 이 복합체가 활성화된 RAS에 달라붙어 물리적인 차단막을 형성하는 방식입니다. RAS 표면에 직접 결합하는 대신, 다른 단백질을 끌어들여 RAS를 막는 구조입니다. 췌장암 환자 약 500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 3상에서 표준 화학요법군과 비교해 전체생존기간(환자 절반이 생존한 기간)은 6.5개월, 무진행생존기간(암이 악화되지 않은 기간)은 3.6개월 연장됐습니다. 암이 줄어드는 반응을 보인 비율(객관적반응률)도 19%포인트 높았습니다. 라손큐는 경구용, 즉 먹는 약으로 개발됐습니다.
범RAS 억제제가 허가됐다고 해서 경쟁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RAS는 암세포뿐 아니라 정상 세포에도 존재합니다. 정상적인 RAS까지 억제할 경우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암젠은 이미 특정 RAS 변이(KRAS G12C)만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치료제 상용화에 성공했습니다. 로슈, 릴리 등 다수의 제약사도 특정 변이 억제제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범용 억제와 선택적 억제, 두 방향의 경쟁이 본격화하는 국면입니다.
이번 허가를 계기로 국내 제약·바이오기업들의 RAS 관련 연구에도 시선이 향합니다. 한미약품은 RAF 결합 구조 전체를 동시에 억제하도록 설계한 벨바라페닙을 개발 중입니다. 현재 흑색종 환자를 대상으로 국내 임상 2상을 진행하고 있으며, 글로벌 기술이전(BD) 활동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SOS1 억제제 'HM101207'도 개발을 검토한 바 있습니다. SOS1은 RAS의 바로 윗 단계에서 작동하는 단백질로, 암세포가 다른 경로로 RAS를 다시 켜는 내성 문제를 막는 역할을 합니다. 유한양행은 SOS1 억제제 'YH44529'를 2024년 총 2080억 원 규모로 기술 도입했습니다. 업계에서는 올해 하반기 중 임상 1상이 시작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바이오텍 오름테라퓨틱스도 설립 초기 범RAS 활성 차단 연구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효능과 부작용, 내성 발생 여부, 병용 전략 등이 향후 범용 RAS 억제제의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RAS 변이는 췌장암 환자 10명 중 9명 이상에서 발견됩니다. 이번 허가는 그 변이를 직접 겨냥한 치료제가 처음으로 임상 근거를 갖추고 시장에 나왔다는 의미입니다. 다만 라손큐는 1차 치료 이후 암이 진행된 전이성 췌장암 환자에 한정된 치료제입니다. 모든 RAS 변이 관련 암에 적용되는 치료제가 아닙니다. 췌장암 표준 치료와 최신 임상 정보는 담당 종양내과 전문의 또는 국립암센터(1577-8899)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40년간 뚫리지 않던 문이 열린 것은 맞습니다. 다음 질문은 그 문 너머에 무엇이 있느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