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에게 서열은 자부심이자 임금표입니다." 대한항공 조종사노조(KAPU)가 2025년 9월 8일 노동쟁의 조정 신청을 알리며 내놓은 말입니다. 12월 아시아나항공과의 통합을 앞두고, 두 회사 조종사를 한 줄로 다시 세우는 작업이 멈춰 섰습니다. 임금 인상률이 아니라 '누가 몇 번째인가'가 쟁점입니다. 이 순번은 한 번 정해지면 정년까지 따라옵니다.
대한항공 조종사노조는 9월 8일, 2024년 단체협약과 2025년 임금 협상이 30차례 교섭에도 타결되지 않아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노동쟁의 조정을 신청했다고 밝혔습니다. 노동쟁의 조정은 파업의 합법성을 얻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절차입니다. 조정 기간은 최대 30일이고, 이 기간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노조는 합법적인 쟁의권을 갖게 됩니다. 노조는 9월 14일부터 20일까지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 앞,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등에서 집회를 예고했습니다.
대한항공 조종사의 파업은 2016년이 마지막이었습니다. 만약 이번에 쟁의행위로 이어진다면 10년 만입니다. 시점도 공교롭습니다. 대한항공은 오는 12월 아시아나항공과의 통합을 앞두고 있습니다. 두 회사의 조종사를 하나의 조직으로 합치려면 서열, 즉 시니어리티를 새로 정리해야 합니다. 통합 일정은 정해져 있고, 조정 기간은 최대 30일입니다. 협상 테이블의 시간이 통합 시계에 맞물려 있는 구조입니다.
서열이 왜 임금표인지부터 봐야 합니다. 조종사의 기장 임명일은 기본급 체계의 기준이 되고, 선임기장·수석기장 수당을 계산하는 출발점이 됩니다. 노조는 "그 격차는 정년까지 누적된다"고 설명합니다. 임명일이 몇 달 앞이냐 뒤냐에 따라 남은 근속 기간 전체의 급여와 승진 시기가 갈린다는 뜻입니다. 노조는 사측이 단체협약 제24조, 즉 노사 합의로 정한 운항승무원 서열 순위 제도를 준수한다는 조항이 있는데도 일방적으로 서열안을 마련했다고 주장합니다. 대상 인원은 2600여 명입니다.
가장 큰 쟁점은 두 회사의 채용 기준이 달랐다는 점입니다. 민간 출신 조종사가 대한항공에 입사하려면 비행경력 1000시간을 채워야 했습니다. 아시아나항공은 300시간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한항공 조종사는 입사 후 계약직 신분을 거쳐 정식 사번인 '정사번'이 늦게 등록되는 구조였습니다. 노조는 이렇게 벌어진 격차를 통합 서열에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기준이 달랐던 두 집단을 하나의 순번표에 넣는 순간, 무엇을 경력으로 인정할지가 곧 임금 문제가 됩니다.
대한항공 사측은 이미 그 차이를 충분히 반영했다고 반박합니다. 사측은 군 출신과 민간 출신 사이의 평균 승격 서열 격차가 대한항공은 9개월, 아시아나항공은 4년으로 존재해 왔고 통합 후에도 이 격차가 유지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 결과 대한항공 민간 경력 조종사가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보다 기장 승격이 평균 3년 3개월 앞선다는 것이 사측 계산입니다. 사측은 외부 컨설팅을 통해 객관적인 서열안을 마련했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노조는 전제가 확정되지 않고 검증도 불가능한 계산이라고 맞섰습니다. 같은 표를 두고 양측의 설명이 정면으로 갈립니다.
쟁점은 절차 문제로도 번졌습니다. 사측은 "합리적 승진 기준 아래 누구를 승진시킬 것인가는 사용자가 가지는 고유한 인사권"이라며 노조의 노동쟁의 조정 신청이 조정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또 노조가 아시아나항공 조종사의 기존 경력과 자격을 인정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노조는 서열이 단체협약에 명시된 노사 합의 사항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서열의 근거를 당사자들이 납득하지 못한 채 확정되면, 그 불신은 결국 조종실 안으로 옮겨간다"고 밝혔습니다.
항공업은 필수 공익사업으로 분류됩니다. 쟁의행위에 들어가더라도 노사가 정한 필수 유지업무 수준의 운항은 유지됩니다. 즉 조정이 결렬돼 쟁의권이 생긴다 해도 모든 항공편이 멈추는 상황은 아닙니다. 다만 운항 계획 변경 가능성은 남습니다. 12월 통합 전후로 대한항공 노선을 이용할 계획이라면, 조정 기간이 끝나는 시점의 발표와 항공사 공지를 확인해 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서열은 자부심이자 임금표"라는 리드의 말은 결국 조종실 안의 신뢰 문제로 이어집니다. 12월까지 남은 시간이 그만큼 짧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