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에 실을 철광석을 지금 계약했다 배는 아직 없습니다. 2030년부터 순차적으로 인도받는 신조선입니다. 그런데 그 배가 앞으로 25년간 무엇을 실을지는 이미 정해졌습니다. HMM이 8일 공시한 계약 규모는 4조 7,000억 원, 기간은 척당 25년입니다. 단발성 수주가 아닙니다. 1년 넘게 이어진 흐름의 세 번째 계약입니다.
HMM은 8일 브라질 최대 광산업체 발레와 총 4조 7,000억 원 규모의 장기운송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습니다. 투입되는 배는 벌크선 8척입니다. 벌크선은 철광석이나 석탄처럼 포장하지 않은 화물을 그대로 실어 나르는 배입니다. 계약 기간은 2030년부터 척당 25년입니다. 운임은 한 번의 운항 단위로 화물을 실은 뒤 10영업일 안에 지급되는 조건입니다. 25년 뒤까지 운송 물량과 대금 지급 방식이 함께 확정된 계약입니다.
HMM과 발레의 계약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HMM은 2024년 5월과 9월에도 발레와 각각 10년 장기운송계약을 맺었습니다. 두 건을 합친 총액은 약 1조 665억 원이었습니다. 이번 계약은 기간이 25년으로 늘고, 금액은 앞선 두 건 합계의 네 배를 넘습니다. 순서도 거꾸로였습니다. HMM은 이 계약을 이행할 벌크선 8척을 지난 6월에 먼저 발주한다고 공시했고, 계약 체결 공시는 그 다음 달에 나왔습니다.
벌크 운임은 시황에 따라 크게 움직입니다. 배가 부족할 때 남의 배를 빌려 쓰는 단기 용선에 의존하면, 그 변동을 그대로 맞게 됩니다. 최원혁 HMM 사장은 2024년 3월 말 취임 이후 '벌크 부문 체질 개선'을 강조해 왔습니다. 주력인 컨테이너 부문을 강화하는 동시에, 벌크에서는 선대를 정리하는 방향입니다. 단기 용선 비중을 낮추고 글로벌 대형 화주와의 장기 계약을 늘려, 고정 수익원을 확보하는 구조입니다. 이번 계약은 그 방향의 가장 큰 사례입니다.
투입될 선박은 21만 톤급입니다. HMM은 이 배에 메탄올·에탄올·중유를 모두 쓸 수 있는 3중 연료 추진엔진이 세계 최초로 장착된다고 밝혔습니다. 연료 규제가 어느 방향으로 가더라도 대응할 여지를 남긴 설계입니다. 선박은 나중에 액화천연가스나 암모니아 추진선으로 개조할 수 있는 사양으로도 만들어집니다. 바람을 보조 추진력으로 쓰는 로터 세일 같은 설비도 함께 실립니다. 25년을 쓸 배이기 때문에, 연료 전환 가능성을 미리 열어둔 셈입니다.
이번 계약 물량은 아직 한 톤도 실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HMM 벌크 부문의 수익성은 2024년 4분기부터 반등했고, 2025년 상반기에만 약 2,400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습니다. 이번 4조 7,000억 원 계약의 실적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2030년 이후 매출로 잡히는 부분이 아직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계약 체결과 실제 운송 개시 사이에 5년의 시차가 있다는 점은 함께 봐야 합니다.
HMM 관계자는 이번 계약을 두고 "글로벌 메이저 화주와의 견고한 파트너십을 다시 한번 입증한 성과"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장기계약 비중 확대와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 등을 통해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강화하고, 고수익·미래 성장 중심으로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회사 측 설명이므로, 실제 이행 여부는 이후 공시와 실적으로 확인할 부분입니다.
계약 금액과 기간, 대금 지급 조건은 모두 8일 공시에 담긴 내용입니다. 기업이 발표자료로 알리는 수주 소식과 달리, 공시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에서 원문을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계약 상대방, 기간, 총액, 계약 조건이 항목별로 적혀 있습니다. 이번처럼 매출이 5년 뒤부터 잡히는 계약은 '언제부터'가 핵심입니다. 배 8척은 2030년부터 순차적으로 들어오고, 그 배가 실을 화물은 이미 정해졌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