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 하나 200만 원, 이제는 물량 싸움 HBM4 칩 한 개의 가격은 약 200만 원입니다. 한 세대 앞선 HBM3E보다 두 배 이상 높은 가격입니다. 그런데 이 칩은 양산 초기에 열 개 중 네 개 이상이 팔 수 없는 제품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비율이 뒤집혔습니다. 삼성전자의 전략도 함께 바뀌고 있습니다.
2026년 9월 20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HBM4의 수율은 양산 초기 60%를 밑돌았지만 최근 80% 안팎까지 올라왔습니다. 수율은 웨이퍼를 투입해 만든 물량 가운데 실제로 팔 수 있는 정상 제품의 비율입니다. HBM은 여러 장의 D램을 수직으로 쌓아 만듭니다. 공정이 복잡해 D램 한 장에만 문제가 생겨도 완제품 전체가 불량이 됩니다. 그래서 수율이 오르면 같은 설비와 같은 웨이퍼를 넣고도 팔 수 있는 제품이 늘어납니다. 원가는 그대로인데 매출이 늘어나는 구조입니다.
삼성전자는 2026년 2월 HBM4 양산 출하를 발표했습니다. 그로부터 약 석 달 만에 HBM4 관련 누적 매출이 10억 달러, 약 1조 4,000억 원을 넘어섰습니다. 회사는 2026년 3분기 HBM4 매출이 직전 분기보다 3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하반기에는 HBM4가 전체 HBM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0%를 웃돌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연말에 100억 달러, 약 14조 원을 넘길 것이라는 관측도 업계에서 나옵니다. 다만 이는 확정된 실적이 아닌 전망치입니다.
수율이 비교적 빠르게 잡힌 배경으로는 삼성전자의 사업 구조가 꼽힙니다. HBM4에는 10나노급 6세대 D램과, 4나노 공정으로 만든 베이스다이가 함께 들어갑니다. 베이스다이는 쌓아 올린 D램 아래에 놓여 신호를 처리하는 칩입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와 반도체 위탁 생산, 첨단 패키징을 모두 갖고 있습니다. D램과 베이스다이, 조립 공정을 한 회사 안에서 연결할 수 있어 개발 단계부터 공정 간 최적화를 동시에 진행했습니다.
기술을 확보하고도 실적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고객사가 원하는 시기에 물량을 대지 못하면 그렇습니다. 수율 다음 과제가 공급 능력인 이유입니다. 삼성전자의 HBM 월평균 웨이퍼 투입량은 2026년 약 18만 장에서 2027년 약 25만 장으로 40% 가까이 늘어날 전망입니다. 후공정에서도 같은 신호가 나옵니다. 글라스 캐리어 외주 세정 물량은 올해 월 2만 장에서 내년 월 5만 장으로 2.5배 늘어날 전망입니다. 글라스 캐리어는 D램 웨이퍼를 얇게 깎을 때 휨과 파손을 막는 유리 지지체입니다. 적층이 8단에서 12단, 16단으로 올라갈수록 더 얇게 가공해야 해 쓰임이 커집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 집계(매출 기준) 삼성전자의 HBM 시장 점유율은 2026년 1분기 21%에서 2분기 33%로 올랐습니다. 같은 기간 SK하이닉스는 58%에서 50%로 내려갔습니다. 두 회사의 격차는 37%포인트에서 17%포인트로 좁혀졌습니다. 실적 기대도 커졌습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최근 1개월 기준 삼성전자의 올해 영업이익 추정치 평균은 375조 7,000억 원으로, 지난해 43조 6,000억 원의 8.6배 수준입니다. 증권가 추정치 평균일 뿐 확정 실적은 아닙니다. 삼성전자 영업이익의 약 97%는 메모리에서 나옵니다. 다음 변수는 7세대인 HBM4E입니다. 삼성전자는 5월 HBM4E 12단 샘플을 주요 고객사에 제공해 검증에 들어갔고, 신뢰성 평가 단계 수율은 70% 이상으로 전해집니다. 실제 양산 시점은 고객사 인증과 수요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HBM에 들어가는 웨이퍼가 늘어나면, 서버와 PC에 쓰이는 일반 D램 공급에는 제약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삼성전자의 HBM 증산이 서버·PC용 D램 가격 협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PC나 서버 구매 계획이 있다면, 점유율 발표보다 월 웨이퍼 투입량과 HBM4 매출 비중 변화를 함께 보는 편이 흐름을 읽는 데 도움이 됩니다. 초기에 열 개 중 네 개 이상을 버려야 했던 200만 원짜리 칩. 그 비율이 뒤집힌 뒤부터, 경쟁의 기준은 기술이 아니라 물량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