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펜스도 없는데, 215kg 로봇팔이 손 닿으면 멈춰 서다니요 🤚 지난 16일 경기 용인 HD현대 로보틱스 로봇 신뢰성센터. 안전 펜스가 열리자 허공을 가르던 로봇팔 상단에 파란 불 대신 노란 불이 들어왔습니다. 사람이 다가서자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졌고, 거리를 더 좁히니 한 번 더 느려졌습니다. 손을 뻗으면 닿을 위치에서는 거짓말처럼 멈췄고, 사람이 물러서자 다시 본래 속도로 돌아갔습니다.
22일 로봇 업계에 따르면, HD현대로보틱스는 올해 7월 협동로봇 HDC 시리즈 3종을 내놨습니다. 협동로봇은 안전펜스로 사람과 거리를 두는 기존 산업용 로봇과 달리, 같은 공간에서 사람과 함께 일하도록 만든 로봇입니다. 중량 215kg의 HDC 시리즈는 펜스 없이 작업하기 위해 자체 안전 시스템 '세이프스페이스 2.0'과 레이더 센서, 충돌 감지 기능을 겹겹이 둘렀습니다. 사람의 접근 정도에 따라 정상 운전 → 감속 → 추가 감속 → 정지, 네 단계로 반응합니다. 들어 올릴 수 있는 무게는 HDC25-18이 최대 25㎏, HDC35-18이 35㎏, HDC50-17이 50㎏입니다.
이 회사가 협동로봇에 도전하는 건 처음이 아닙니다. 2020년 자체 협동로봇을 처음 선보였지만, 기업들이 실제로 무엇을 원하는지 읽지 못해 시장에서 외면받았습니다. 결국 이미 납품한 제품을 회수하는 극약처방까지 내렸습니다. 그 실패를 곱씹으며 장기간 연구개발을 거쳐 나온 것이 6년 만의 신제품 HDC 시리즈입니다. 제품 종류도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2024년 32종이었던 라인업은 지난해 35종, 올해 39종을 거쳐 내년 54종으로 확대될 예정입니다.
회사는 HDC를 '하이브리드 협동로봇'이라고 부릅니다. 협동로봇 시장의 주력은 10~15㎏급인데, 25~50㎏의 더 무거운 물체를 산업용 로봇에 가까운 속도로 다루겠다는 뜻입니다. 최고 속도는 세 모델이 각각 초속 6.89m, 5.91m, 5.49m입니다. 현장에서 중요한 건 이 속도가 아니라 멈추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작업자가 자재를 보충하거나 팔레트를 바꾸러 다가가도 로봇 전체를 세우는 대신 속도만 낮추고, 사람이 벗어나면 정상 속도로 복귀합니다. 안전 기능이 생산 중단 시간을 줄이는 쪽으로 설계된 구조입니다. HDC 시리즈는 이미 자동차 부품 이송·가공 공정에서 현장 검증 중입니다.
다음 카드는 더 무거운 쪽입니다. HD현대로보틱스는 내년 1월 중대형·초대형 범용 로봇팔 HDT 시리즈 14종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눈에 띄는 모델은 들어 올릴 수 있는 무게가 최대 1톤, 팔이 닿는 거리가 3.3m인 HDT1000-33으로, 자동차·배터리 등 대형 제조라인의 고하중 자동화 수요를 겨냥했습니다. 다만 이 시장은 빈 땅이 아닙니다. 독일 쿠카와 일본 화낙이 일찌감치 1톤 이상 초대형 로봇 시장을 열었고, 중국 에스툰도 지난해 동급 모델로 경쟁에 가세했습니다. 국내 기업으로서는 뒤늦게 내미는 도전장입니다.
안성환 HD현대로보틱스 최고기술책임자(CTO) 겸 연구소장(상무)은 "현재 30여 개 이상의 잠재 고객사와 공급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며 "대형 제조사와 협동로봇 전문 SI·대리점을 중심으로 초도 물량 공급도 순차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회사 목표는 내년 100대 이상 공급을 시작으로 2030년까지 국내 고가반 협동로봇 시장에서 50% 이상 점유율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시선은 휴머노이드에도 닿아 있습니다. 현재는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조작 작업을 학습시키는 단계이며, 이후 자사 제어기 조립 공정에 직접 투입해 데이터를 쌓겠다는 계획입니다. 손 기술 확보를 위해 최근 감각·촉각 센서 업체 에이딘로보틱스에 130억 원을 투자하고 다섯 손가락 구조의 로봇손 공동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안 상무는 "협동로봇과 휴머노이드는 형태는 다르지만 제어·구동·안전·센서 등 상당 부분의 기술을 공유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회사가 궁극적으로 말하는 목표는 로봇 한 대가 아니라 공장 전체입니다. 여러 종류의 로봇과 인공지능을 하나의 제조환경에서 연결하는 '로봇 정의 공장(RDF)'이고, 이를 위해 숙련공 작업 데이터와 로봇 운영·시뮬레이션 데이터, 현장 피드백을 모아 학습시키는 체계를 만든다는 방침입니다. 협동로봇 도입을 검토하는 제조 현장이라면 확인할 지점은 세 가지로 좁혀집니다. 들어 올려야 하는 무게, 요구되는 속도, 그리고 사람이 접근했을 때 로봇이 멈추는지 느려지는지입니다. 용인 신뢰성센터에서 로봇팔이 사람 앞에서 멈췄다가 다시 달린 그 몇 초가, 회사가 팔려는 것의 실체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