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점유율 55%에서 35%로, 정부가 나트륨 배터리를 꺼내 들다 🧂 황경인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사안을 이렇게 진단했습니다. "K배터리 위기의 근본 원인은 전기차 캐즘 자체가 아니라 우리의 주력 시장과 주력 제품의 경쟁력 약화." 지난해 유럽 전기차 시장은 전년보다 30% 커졌습니다. 그런데 한국 배터리 3사의 유럽 점유율은 그 사이 오히려 내려갔습니다. 시장이 자라도 열매는 다른 쪽이 따갔다는 뜻입니다. 정부와 기업이 22일 내놓은 답은, 지금 주력인 배터리를 더 잘 만드는 게 아니라 아예 다른 배터리를 두 종류 더 만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26년 9월 22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배터리 산업기술 로드맵'을 발표했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과 포스코퓨처엠·엘앤에프·에코프로비엠이 자리를 함께했습니다. 돈의 구조는 이렇습니다. 정부가 2027~2031년 약 4,000억 원 규모의 연구개발 사업을 신설하고, 민간이 2030년까지 약 8조 원을 연구개발과 설비에 넣습니다. 합치면 8조 4,000억 원, 대부분이 기업 돈입니다. 지원이 몰리는 곳은 두 군데입니다. 값싼 나트륨 배터리는 내년에 kg당 160Wh급, 2030년에 220Wh급 기술 개발을 마쳐 보급형 전기차와 에너지저장장치에 넣습니다. 고성능 전고체 배터리는 2028년 400Wh급 기술을 확보한 뒤 2030년 상용화해 로봇·드론·도심항공교통을 노립니다.
숫자를 시간 순으로 놓으면 이번 발표의 다급함이 보입니다. 한국 배터리 기업의 유럽 전기차 시장 합산 점유율은 2023년 55%에서 2025년 35%로 내려갔습니다. 같은 기간 중국 업체는 42%에서 61%로 올라섰습니다. 두 선이 그대로 자리를 바꾼 셈입니다. 수출도 같은 방향입니다. 국내 2차전지 수출액은 2022년 99억 8,000만 달러에서 2025년 72억 3,000만 달러로, 3년 새 27.6% 줄었습니다. 올해 1~7월 전 세계 전기차용 배터리 공급량에서는 중국 CATL이 39.9%, BYD가 14.7%를 차지했습니다. 두 회사만 합해 54.6%, 전기차에 들어간 배터리의 절반이 이 두 곳에서 나왔습니다.
밀린 자리는 '값'이었습니다. 중국이 주력으로 삼는 배터리는 리튬인산철, 줄여서 LFP라고 부릅니다. 국제에너지기구 집계로 지난해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에서 LFP 비중은 55%를 넘었고, 에너지저장장치에서는 90%를 넘었습니다. LFP 배터리팩 값은 한국의 주력인 하이니켈 배터리보다 평균 40% 이상 낮았습니다. 차이는 화학조성만이 아닙니다. 중국은 소재부터 셀까지 이어지는 공급망과 큰 생산 규모로 원가를 낮추고, 낮아진 값으로 다시 물량을 늘리는 순환을 만들어 놨습니다. 지금부터 LFP 생산능력을 똑같이 키워 따라붙기에는 출발선이 다릅니다. 정부가 LFP가 아니라 나트륨과 전고체에 무게를 실은 이유입니다.
그렇다고 빈 땅에 먼저 깃발을 꽂는 그림은 아닙니다. 나트륨 배터리는 리튬·니켈·코발트를 쓰지 않아 원료비와 공급망 위험을 줄일 여지가 있습니다. 다만 아직 LFP보다 확실한 가격 우위를 확보하지는 못했고, CATL과 BYD는 이미 개발과 양산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핵심 음극 소재인 하드카본도 중국 비중이 높습니다. 저가 시장의 '다음 세대'까지 내주지 않기 위한 추격전에 가깝습니다. 전고체는 아직 판이 굳지 않았지만, 벽이 값입니다. 현재 제조비용은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의 3~5배 수준입니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은 이르면 2027~2028년 소형 제품의 소량 생산이 시작되고, 전기차 적용은 2030년 이후에 가시화될 것으로 봤습니다. 맹진규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원은 "성능·경제성 등 총체적인 우위를 확보하려면 규모의 경제 달성이 관건"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새 전장은 에너지저장장치, 즉 ESS입니다. 산업연구원은 세계 ESS 수요가 2023년 185GWh에서 2035년 1,449GWh로 연평균 19%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인공지능 데이터센터에 쓰이는 무정전전원장치 배터리는 같은 기간 연평균 40% 성장이 예상됩니다. 다만 지금처럼 LFP 중심 구도가 이어지면 이 성장의 수혜도 중국으로 갈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이 돌파구로 꼽는 곳은 미국입니다. 미국은 중국산 ESS 관세를 높이는 동시에, 자국에서 생산한 배터리에 생산세액공제를 적용하고 중국산 소재 사용을 단계적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황경인 연구위원은 "미국 현지 생산이 가능하고 탈중국 공급망 구축 성공 가능성이 높은 한국 기업이 미국 시장에서 원가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습니다. 산업연구원은 미국 ESS 시장이 2023년 55GWh에서 2035년 320GWh로 커질 것으로 봤습니다.
이번 로드맵에는 기업끼리 같은 걸 두 번 개발하지 않게 하는 장치도 들어갔습니다. 셀 3사가 규격과 차세대 집전체처럼 경쟁과 무관한 분야에서 공동 사양을 만들고, 소재 업체가 개발한 제품을 셀 업체가 실증·구매하는 연계형 연구개발을 합니다. 완성차 업체의 배터리관리시스템 정보를 셀·소재 개발에 쓰는 체계도 만듭니다. 정부는 국내 생산 세제 지원과 배터리 재활용 체계 구축을 함께 추진한다는 방침입니다. 이민우 산업부 산업성장실장은 "대규모 R&D 지원과 제도적 인센티브 마련을 통해 K배터리가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을 확실히 탈환할 수 있도록 총력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앞으로 확인할 지점은 세 개의 날짜입니다. 내년 나트륨 160Wh급, 2028년 전고체 400Wh급, 2030년 전고체 상용화. 유럽에서 2년 만에 20%포인트를 잃은 흐름이 바뀌었는지는, 이 일정이 지켜졌는지로 먼저 드러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