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HMM은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본점 소재지를 부산으로 옮기는 정관 개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산업은행 회장이 "부산 본사 이전이 끝난 뒤 매각을 추진할 수 있다"고 했던 그 조건이 채워진 겁니다. 그런데 넉 달이 지난 지금, 매각 얘기는 조용합니다. 대신 대형 증권사들이 조용히 다른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자사주 공개매수 주관사 자리를 놓고 사전 타당성 검토에 들어간 것입니다.
◾ 매각 대신 자사주 얘기가 돌기 시작했다
9월 28일 자본시장 나침반 '시그널'이 투자은행 업계를 취재한 내용에 따르면, HMM이 올해 결산 실적을 집계한 뒤 내년 1~2월 추가 주주환원 계획을 세우는 과정에서 자사주 매입의 윤곽이 드러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주요 대형 증권사들은 주관사 선정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미 사전 검토에 착수했습니다. 지난해 2조 원 규모의 1차 자사주 공개매수를 이끌었던 KB증권이 다시 맡을 가능성도 거론됩니다.
◾ 조건은 다 채웠는데, 동력이 사라졌다
연초까지만 해도 시장의 시선은 매각에 있었습니다. 박상진 산업은행 회장이 기자간담회에서 부산 본사 이전 완료를 매각의 전제로 제시했고, HMM은 5월 주주총회로 그 조건을 실제로 충족시켰습니다. 포스코와 하림, 동원 같은 인수 후보군도 인수 가능성을 따져보는 단계까지 갔습니다. 하지만 중동 리스크가 길어지고 공공기관 지방 이전 같은 국정 현안이 쌓이면서, 정부 차원의 매각 추진력이 떨어졌다는 평가가 업계에서 지배적입니다.
◾ 10조 원이 넘는 현금이 방향을 정한다
민영화 일정이 정체되자 대주주인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 그리고 투자은행 업계는 다른 회수 경로를 봅니다. 자사주를 대규모로 사들여 없애는 방식입니다. HMM의 현금 유동성 여력은 최소 10조 원을 넘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래서 2차 매입이 성사되면 지난해 2조 원을 웃도는 규모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다만 이는 업계 추정이며, 확정된 금액은 아닙니다.
◾ 주식 수를 줄여야 팔기도 쉬워진다
자사주 매입이 단순한 주가 부양책만은 아닙니다. 과거 공적자금을 투입할 때 발행됐던 HMM의 영구 전환사채가 모두 주식으로 바뀌면서 발행주식 수가 크게 늘었습니다. 영구 전환사채는 만기가 없거나 매우 긴 채권인데, 조건이 맞으면 주식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늘어난 주식 수를 줄여두면 나중에 경영권을 넘길 때의 부담도 가벼워집니다. 자사주를 사서 소각하는 것이 회수와 매각 준비를 동시에 겨냥한 수단으로 읽히는 이유입니다.
◾ 회사 공시에는 그 계획이 없다
그런데 정작 HMM의 공식 중장기 계획에는 추가 자사주 매입이 적혀 있지 않습니다. HMM은 올 7월 공시에서 2030년까지 컨테이너선·벌크선 확대와 해외 터미널 인프라 확보 등에 총 29조 원을 투자한다고 밝혔습니다. 앞서 3월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에서는 2030년까지 배당성향 30%에 해당하는 금액을 주주환원에 쓰겠다고 했습니다. 투자에 29조 원이 걸려 있고 주주환원 방식은 배당으로 명시된 상태라, 당장 논의가 진전될지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함께 나옵니다.
◾ 그래도 가능성을 낮게 보지 않는 이유
대주주 측과 투자은행 업계는 실행 가능성을 낮게 보지 않습니다.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의 건전성 개선 필요성, 정부의 추가 공적자금 회수 요청 같은 외부 변수를 함께 놓고 보면 자사주 매입·소각이 가장 빠른 수단이라는 판단입니다. 한 투자은행 업계 관계자는 "주식 수 축소를 위한 주식병합 방식도 거론되지만 주가를 인위적으로 올려 소액주주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이 있어 쉽지 않다"며 "자사주 공개매수 후 소각은 주가 부양과 유동성 공급, 공적자금 회수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 한 가지만 기억한다면
지금 확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회사 공시에 자사주 매입 계획은 없고, 증권사들의 움직임은 주관사 선정 가능성을 염두에 둔 사전 검토 단계입니다. 그래서 확인할 시점이 중요합니다. HMM이 올해 결산 실적을 집계한 뒤 내년 1~2월 추가 주주환원 계획을 내놓을 때, 여기에 자사주 매입이 들어가는지가 첫 갈림길입니다. 5월에 본사를 부산으로 옮기며 매각 조건을 다 채워둔 회사가, 매각 대신 어떤 답을 내놓는지는 그 공시에서 드러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