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석 하나가 붙어 있었습니다. 문은 열려 있는데 기계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 2024년 6월 경기 화성의 플라스틱 용기 제조업체. 상용직 근로자가 성형기 내부를 점검하던 중 금형 사이에 끼여 숨졌습니다. 문을 열면 기계가 멈추도록 근접센서가 달려 있었지만, 그 센서 표면에는 지름 2cm 자석이 붙어 있었습니다. 문이 열려도 램프는 계속 켜져 있었고, 기계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겉으로 보면 근로자가 자석을 붙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산업안전보건공단의 조사 의견서가 지목한 것은 다른 쪽이었습니다.
◾ 51건이 홈페이지에 올라왔다
고용노동부는 2026년 6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시행에 맞춰 그해 5월부터 홈페이지에 재해조사보고서를 공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공개된 건 모두 2024년에 발생해 판결이 확정된 중대재해 51건입니다. 서울경제신문은 이 중 제조업 사업장 사망사고 7건을 분석했습니다. 사고 초기 수사 기록과 통계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은 '작업자 부주의', '발 헛딤', '조작 미숙'이었습니다. 개인의 과실을 지목하는 문구들입니다. 보고서는 달랐습니다.
◾ 라인을 멈출 권한이 없었다
화성 A사의 자석 얘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플라스틱 용융 성형기는 가동을 완전히 멈추고 냉각하면, 다시 예열하는 데 원료 손실과 수 시간의 가동 중단이 따릅니다. 제품 온도가 올라 불량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근로자에게는 라인을 멈출 권한도, 그럴 때 어떻게 하라는 표준작업절차도 없었습니다. 보고서가 핵심 결함으로 기록한 건 세 가지였습니다. 일반 자석으로 우회되는 단순 센서를 인터록으로 방치한 점, 전용 키가 있어야 풀리는 무력화 방지 스위치나 물리적 래치를 달지 않은 점, 정비 때 전원을 끄고 자물쇠를 채우는 LOTO 체계가 없었던 점입니다. 기계는 최대 1.3m였던 금형 간격을 33cm로 좁혔습니다.
◾ 보폭보다 17cm 넓은 간격
같은 해 2월 충남 아산의 화학비료 제조업체에서는 일용직 근로자가 4.7m 높이 창고 지붕에서 노후 채광창을 해체하다 떨어져 치료 중 숨졌습니다. 공단 직원이 실측한 결과, 지붕 위 철골 지지대의 나사못 구멍 간격은 91cm였습니다. 대한인간공학회 논문에 실린 40~50대 한국인 남성 평균 보폭은 74cm입니다. 17cm를 더 벌려야 건널 수 있는 간격이었고, 지붕 경사는 9도였습니다. 중심을 잃고 딛게 된 채광창의 두께는 1~1.13mm, 2016년 설치된 노후 플라스틱 제품이었습니다. 4.7m에서 떨어질 때 인체에 걸리는 충격력은 약 2,906kg으로, 두개골 한계 충격력 200kg을 크게 넘습니다. 작업 발판도, 추락방호망도, 안전대 부착설비도 없었습니다.
◾ 벽돌 한 장이 빠지면 프로그램이 틀린다
4월 화성의 콘크리트 블록 제조업체에서는 자동 적재기에 끼여 사망하는 사고가 났습니다. 공단 직원이 현장에서 사고를 재현해 보니, 1번 센서 부근에서 벽돌 한 장이 빠질 경우 컨베이어가 규정인 6줄을 넘어 최대 12줄까지 이송하는 프로그램 에러가 확인됐습니다. 사고 당시엔 7줄이 들어왔고 2번 센서가 이를 감지해 기계가 멈췄습니다. 운전원이 자동모드 상태에서 7번째 줄을 치우자, 센서 감지가 풀리는 순간 큐빙기는 정상으로 인식하고 하강을 시작했습니다. 이 설비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산업용 로봇에 해당했지만, 1.8m 안전 방책도 출입문 연동 인터록도 없었습니다. 방책과 컨베이어 사이에는 폭 0.6m 틈새 통로가 남아 있었습니다.
◾ 표식이 없는 스위치, 버팀대 없는 390kg
나머지 사고들도 결이 같습니다. 충남 서산의 기계장치공사업체에서는 계약직 근로자가 반출 중이던 열교환기에 깔려 숨졌습니다. 가로 79cm·세로 140cm·무게 390kg에 하중의 약 80%가 판형 쪽으로 쏠린 비대칭 설비였고, 바닥을 잡던 직경 95mm 받침플레이트 3개가 제거된 채 두께 20mm 지지대 3개로 서 있었습니다. 전북 정읍 단미사료 업체에서는 관리자가 크레인 조작반 옆의 파쇄기 조작반을 눌러 사고가 났습니다. 2010년 편의를 위해 임의로 늘린 조작반에는 부하 명칭도, 가동·정지 표식도 붙어 있지 않았습니다. 화성의 재생플라스틱 업체에서는 600kg 톤백을 파렛트랙 없이 2단으로 쌓았고, 손상된 팔레트로 아래 톤백이 찢어져 근로자가 청테이프로 막던 중 위쪽 톤백이 무너졌습니다. 인천 서구 골판지 업체에서는 70대 근로자가 1톤 화물차 캡 위에서 그물망을 묶다 루프 랙에 발이 걸려 떨어졌는데, 안전대 부착설비도 안전모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 "주의하라"는 말로는 막지 못한다
7건 모두 가동 중 설비의 점검, 수리, 에러 조치, 상·하차 같은 비정형 작업 중에 일어났습니다. 보고서들은 근로자의 주의력을 환기하는 관리적 대책으로는 인적 오류를 차단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대신 설비 자체가 사람의 실수를 방어하도록 설계하는 Fail-Safe 체계를 강조했습니다. 류현철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산업안전보건본부로서 마땅한 애도와 추모는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라며 "중대재해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기업과 연구자, 노동자들이 보고서를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적었습니다.
◾ 한 가지만 기억한다면
보고서들이 제시한 대책은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치수와 장치 이름입니다. 문을 열면 기계가 물리적으로 멈추는 무력화 방지 인터록, 정비·보수 시 전원 차단과 잠금장치를 거는 LOTO 의무화, 보폭을 고려한 30cm 이상 작업 발판과 추락방호망, 산업용 로봇 주변 1.8m 방책, 중량물 전도 방지 버팀대와 파렛트랙입니다. 내 일터의 점검문에 전용 키 없이 풀리는 센서만 달려 있는지, 정비할 때 전원을 잠글 자물쇠가 있는지는 확인할 수 있는 항목입니다. 51건의 보고서는 고용노동부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습니다. 화성 A사의 그 자석은, 라인을 멈출 권한이 없던 사람이 붙일 수밖에 없었던 자석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