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리의 마법이 끝난다 — TR ETF 시대는 왜 저물었나
투자자에게 배당금을 손에 쥐여주지 않고, 대신 그 돈을 자동으로 다시 굴려주는 상품이 있다. TR(Total Return) ETF다. 이자나 배당 같은 수익이 발생하면 현금으로 나눠주는 대신 상품 안에 그대로 재투자되는 구조라, 세금을 매도 시점까지 미룰 수 있는 과세이연 효과와 복리 효과를 동시에 누릴 수 있어 인기가 높았다. 실제로 10년 단위로 비교하면 TR ETF의 수익률이 일반 ETF(PR ETF)보다 크게 앞섰다는 통계도 있었다.
그런데 정부가 이 구조에 제동을 걸었다. 명분은 과세 형평성이다. 정부는 TR ETF가 재투자를 '지수 구성 종목 교체'로 해석해 배당 관련 세금을 사실상 유예해온 관행을 문제 삼았고, 개정안을 통해 이자·배당 수익은 종목 교체와 무관하다는 조항을 새로 못박았다. 쉽게 말해 재투자를 하더라도 배당에 대한 세금만큼은 제때 내야 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한 셈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해외주식형 TR ETF도 다른 펀드들처럼 연 1회 이상 이자·배당 수익을 분배해 과세하거나, 원천징수 후 재투자하는 방식으로 바뀐다. 다만 침체된 국내 증시를 배려한 예외 조항도 있다. 국내 주식형 TR ETF에 한해서는 분배 유보가 계속 허용되기 때문에, 이번 시행령의 실질적 타격은 해외지수를 추종하는 TR ETF에 집중된다.
국내 자산운용업계의 대응도 빨랐다. 해외지수 TR ETF 시장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던 대형 운용사는 관련 상품의 분배 방식을 분기 배당으로 전환하기로 했고, 업계 다른 대형사들도 비슷한 조치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현금으로 분배금을 받게 되면 연간 이자·배당 소득이 일정 금액을 넘는 투자자의 경우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시장의 반응은 엇갈린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장기·연금 계좌에서 복리 효과를 노리고 TR ETF를 담아온 전략을 다시 짜야 하는 상황에 놓였고, 제도 시행 전부터 관련 상품에서 자금이 빠져나가는 움직임도 감지됐다. 일각에서는 이 자금이 국내 증시가 아니라 아예 해외 상장 ETF로 직행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반대로 이번 개정을 뒤늦게나마 바로잡힌 관행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동안 TR ETF가 세금 유보 조항을 지나치게 넓게 해석해 운용돼왔다는 지적이 꾸준했던 만큼, 이번 조치로 과세 체계의 모호함이 걷혔다는 평가다. 결국 관건은 정부가 운용사들과 함께 자금 이탈 같은 부작용을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 복리의 마법에는 이제 세금이라는 조건이 하나 더 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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