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약 시장에서 3조 2000억짜리 선택을 받은 이유 "살만 빠지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근육도 같이 빠진다." 기존 비만 치료제를 쓴 환자들이 겪는 부작용 중 하나입니다. 한미약품이 이 문제를 겨냥한 신약 후보 물질을 개발했고, 글로벌 빅파마인 로슈의 자회사 제넨텍이 최대 3조 2000억 원을 쓰기로 했습니다. 국내 제약사와 글로벌 빅파마 사이에서 단일 물질 기술이전 계약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입니다.
한미약품은 2025년 1월 24일, 대사 질환 치료제 후보 물질 'HM17321'을 제넨텍에 기술이전했다고 공시했습니다. 계약 조건은 두 층위로 나뉩니다. 반환 의무가 없는 선급금은 1억 9000만 달러, 한화로 약 2629억 원입니다. 단계별 기술료를 합산한 총계약 규모는 최대 23억 500만 달러, 한화 약 3조 1892억 원에 달합니다. 제품이 출시된 뒤에는 매출 규모에 연동된 로열티도 별도로 받습니다. 제넨텍이 확보한 권리는 한국을 제외한 전 세계 개발·제조·상업화 독점권입니다. 한미약품은 한국 내 권리를 유지합니다.
지금 가장 널리 쓰이는 비만 치료제는 GLP-1 계열입니다. GLP-1은 글루카곤유사펩타이드-1의 줄임말로,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고 식욕을 억제하는 호르몬을 모방한 물질입니다. 이 계열 약물은 체중 감량 효과를 입증했지만, 체중이 줄 때 지방뿐 아니라 근육 등 제지방량도 함께 줄어드는 문제가 지적돼 왔습니다. HM17321은 다른 경로로 접근합니다. UCN2, 즉 유로코르틴2 유사체로 설계된 물질로, 근육 보존에 관여하는 별도의 기전을 활용합니다. 비임상시험에서는 단독 투여와 GLP-1 병용 투여 모두에서 체중 감량과 체성분 개선 효과를 보였습니다. 현재는 미국 FDA 승인을 받아 임상 1상을 진행 중입니다. 건강한 성인과 비만 환자를 대상으로 안전성, 내약성, 체내 흡수·대사 양상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임상 1상이 끝나면 제넨텍이 2상부터 개발을 이어갑니다.
비만 치료제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습니다. 의약품 시장조사 업체 IQVIA에 따르면, 글로벌 비만 치료제 시장은 2024년 460억 달러, 약 64조 원을 기록했습니다. 2034년에는 978억 달러, 약 135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IQVIA는 전망합니다. 10년 안에 두 배 이상 커지는 시장입니다. 시장이 커질수록 경쟁도 심해집니다. GLP-1 계열 약물 시장에는 이미 여러 빅파마가 진입해 있습니다. 후발 주자가 같은 기전으로 경쟁하기보다, 기존 약물의 한계를 보완하는 병용 치료제나 차별화된 기전이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구조입니다. HM17321이 GLP-1 단독 치료의 보완재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이 제넨텍의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업계에서 나옵니다.
3조 2000억 원이라는 숫자는 총계약 규모입니다. 이 중 지금 확정된 것은 2629억 원의 선급금이고, 나머지는 개발 단계별 목표를 달성할 때마다 지급되는 조건부 금액입니다. 임상 2상, 3상, 허가, 출시 등 각 단계를 통과해야 비로소 받을 수 있습니다. 신약 개발의 특성상 임상 1상을 통과한 물질이 최종 허가까지 가는 비율은 높지 않습니다. 총계약 규모가 곧 한미약품이 받을 금액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동시에, 반환 의무 없는 선급금 2629억 원은 임상 결과와 무관하게 확보된 금액입니다.
최인영 한미약품 부사장은 공시 당일 이렇게 말했습니다. "비만 치료가 단순한 체중 감량을 넘어 체성분 개선과 대사 건강 회복으로 진화하고 있다. HM17321의 차별화된 작용 원리와 개발 잠재력을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은 성과다." 제넨텍 입장에서는 급성장하는 비만 치료제 시장에서 기존 GLP-1 계열과 다른 기전의 파이프라인을 확보한 셈입니다. 임상 1상이 끝난 뒤 2상을 직접 이끌어 글로벌 개발권을 선점하는 구조입니다. 업계에서는 이번 계약이 기전의 차별성이 가진 가치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합니다. GLP-1 시장에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GLP-1의 빈틈을 채우는 위치를 잡은 것입니다.
이번 계약에서 확정된 금액은 선급금 약 2629억 원입니다. 나머지 최대 약 2조 9000억 원은 개발 단계별 조건에 달려 있습니다. "3조 2000억 원 계약"은 달성 가능한 최대치이지, 이미 받은 금액이 아닙니다. HM17321의 향후 개발 일정과 임상 결과는 한미약품 공시 및 미국 FDA 임상시험 등록 사이트(ClinicalTrials.gov)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근육 보존을 앞세운 비만 치료제 후보 물질이 3조 원의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사실은, 비만 치료의 기준이 체중 숫자 하나에서 체성분 전체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