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물가, 5년 넘게 안 잡힌 이유를 연준이 직접 말했습니다 12개월 기준 물가 상승률 3.7%. 연준 목표치 2%의 거의 두 배입니다. 미국 소비자들은 2020년대 초부터 65개월째 목표치를 웃도는 물가를 견디고 있습니다. 이번 주 연준 의장이 잭슨홀 심포지엄 연설에서 밝힌 것은 "공급망 탓"이 아니었습니다. "책임은 온전히 중앙은행에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28일(현지시간) 와이오밍주 잭슨홀 경제정책 심포지엄 기조연설에서 "65개월 동안 지속된 고인플레이션의 책임은 온전히 중앙은행에 있다"고 밝혔습니다. 현재 12개월 기준 PCE(개인소비지출) 물가지수는 3.7%, 6개월 연율 기준으로는 4.1%입니다. 세부 품목의 54%가 3% 이상 오르고 있습니다. 연준의 공식 목표치 2%와는 여전히 거리가 있습니다.
2021년 물가가 급등했을 때 연준은 "일시적"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코로나 이후 공급망 병목이 해소되면 자연히 가라앉을 것이라는 시각이었습니다. 이 판단 아래 연준은 금리 인상 시기를 미뤘습니다. 워시 의장은 이날 "2021년 당시의 포워드 가이던스(금리 향방을 미리 안내하는 관행)가 금리 인상 타이밍을 늦춘 주범"이었다고 직접 지목했습니다. 위기 때 도입한 사전 안내 관행이 위기가 끝난 뒤에도 계속 유지되면서 대응이 늦어졌다는 것입니다.
금융위기(2008년) 이후 연준은 기준금리 조정과 자산매입(QE, 중앙은행이 채권 등을 사들여 시중에 돈을 푸는 방식)에 집중하면서 M2 같은 통화량 지표를 정책 판단에서 사실상 배제해 왔습니다. 통화량은 시중에 실제로 돌아다니는 돈의 총량을 뜻합니다. 워시 의장은 "유행은 아니지만 통화량은 통화정책과 중대한 관련이 있다"며 "중앙은행이 공급하는 본원통화뿐 아니라 은행과 금융 시스템 전체가 만들어내는 통화량의 흐름에 다시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금리 하나만 보다가 돈의 실제 흐름을 놓쳤다는 지적입니다.
워시 의장이 이날 특히 강하게 비판한 것은 "거울의 방(Hall of Mirrors)" 구조입니다. 시장이 연준의 신호만 보고 움직이고, 연준은 다시 그 시장 가격을 보고 정책을 결정하는 순환입니다. 서로 실제 경제 상황보다 상대방의 반응을 먼저 보는 구조가 됩니다. 워시 의장은 "이 구조에서 연준이 새로운 변화에 눈이 멀고 정책 오류에 빠지게 된다"며 "그 피해는 고물가와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서민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고 말했습니다.
일각에서는 물가가 고점에서 내려왔다는 점을 들어 금리 인하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그러나 워시 의장은 이날 연설에서 매파(물가 안정 우선) 기조를 재확인했습니다. "기저 인플레이션이 2% 목표로 충분한 속도로 수렴한다는 확신이 설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54%의 품목이 여전히 3% 이상 오르는 상황에서 목표 달성을 선언하기에는 이르다는 판단입니다.
워시 의장이 이날 연설에서 복권시키겠다고 한 지표는 M2 통화량입니다. 앞으로 연준이 금리뿐 아니라 시중 통화량 증가 속도도 정책 판단 기준으로 삼겠다는 뜻입니다. 연준의 다음 금리 결정을 읽을 때, 기준금리 수치 외에 M2 증감 추이를 함께 확인하는 것이 유용해집니다. 연준 공식 통계는 미국 연방준비제도 홈페이지(federalreserve.gov)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65개월째 이어진 고물가, 그 시작점을 연준 스스로 "정책 실기"로 인정한 날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