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과 기술뿐 아니라 적기에 인력을 투입하는 역량도 반도체 경쟁력의 핵심입니다." 한 재계 관계자가 새 노동 지침을 두고 한 말입니다. 고용노동부는 최근 공장을 새로 짓는 것 같은 고도의 경영상 결정은 노조가 파업까지 갈 수 있는 교섭 대상이 아니라고 못 박았습니다. 그런데 그 공장을 실제로 돌리기 위해 사람을 어디로 보낼지, 그 문제는 교섭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남겨뒀습니다. 산업 현장에서는 "핵심 쟁점은 그대로"라는 반응이 나옵니다.
3일 재계에 따르면, 고용노동부가 최근 발표한 '노동쟁의 대상 관련 시행지침'을 두고 산업 현장에서 "반쪽짜리 지침"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지침은 두 가지를 분명히 했습니다. 회사의 영업이익에 연동해 성과급을 달라는 요구, 그리고 공장을 새로 짓겠다는 결정 자체는 회사가 반드시 교섭에 응해야 하는 사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만 신규 공장을 가동하기 위한 인력 운영 계획이 구체화되면, 그에 따라 기존 직원을 다른 사업장이나 부서로 이동시키는 배치전환은 교섭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규정했습니다. 경영 판단 자체는 막을 수 없지만, 실행 단계에서는 합법적인 쟁의 가능성이 남은 구조입니다.
우려는 가정이 아닙니다.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초기업노조는 조합원 다수가 반대한다는 이유로, 호남 반도체 프로젝트를 2027년 교섭 의제로 다루겠다는 입장을 이미 밝힌 바 있습니다. 기업이 전략적 투자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노사 협의가 별도의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새 지침은 공장을 짓겠다는 결정 자체는 교섭 밖에 두었지만, 그 공장에 누구를 보낼지를 교섭 안에 남겼습니다. 노조가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통로는 그대로 열려 있는 셈입니다.
반도체 같은 첨단 산업에서는 '투자 결정'과 '인력 재배치'를 떼어놓기가 사실상 어렵습니다. 대규모 프로젝트가 본격화되면 최첨단 생산라인을 돌리기 위해 기존 사업장의 숙련 엔지니어를 투입해야 하고, 이들이 신규 인력에게 기술을 전수하는 과정이 필수적으로 따라옵니다. 학계에서도 "인력 재배치는 투자의 부수 절차가 아니라 투자 실행 과정의 핵심"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사람을 옮기는 문제를 교섭 대상으로 남겨두면, 투자 결정을 교섭에서 빼둔 효과가 실행 단계에서 상당 부분 상쇄될 수 있다는 것이 재계의 문제 제기입니다.
전문가들은 정권이나 부처의 해석에 따라 바뀔 수 있는 행정지침만으로는 현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어렵다고 지적합니다. 배치전환의 정당성은 이미 근로기준법에 따라 법원이 사후적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단체교섭과 쟁의 절차까지 겹치면, 기업의 경영 판단이 위축되고 노사 양쪽의 비용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경제계와 법조계에서는 신규 투자에 따른 인력 이동을, 기존 인력을 줄이는 구조조정과 같은 것으로 취급하는 것은 법리적으로 맞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됩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공장 신설과 같은 고도의 경영상 결정은 노사 갈등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며 "숙련 인력의 신속하고 유연한 투입 없이는 첨단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초기업노조는 조합원 다수의 반대를 근거로 해당 프로젝트를 교섭 테이블에 올리겠다는 입장입니다. 같은 사안을 두고 한쪽은 경영 판단의 영역이라 말하고, 다른 쪽은 조합원의 근로조건 문제라고 봅니다. 지침이 그 경계를 명확히 그어주지 못했다는 점이 논란의 출발점입니다.
지금 논의의 핵심은 '지침'과 '법'의 차이입니다. 이번에 나온 것은 법이 아니라 고용노동부의 행정지침이고, 해석 주체가 바뀌면 내용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국회와 정부가 보완 입법으로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노조법에 근거를 만들어 '신규 투자에 따른 배치전환은 노동쟁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원칙을 조문으로 남기자는 주장입니다. 그사이 미국과 일본은 대규모 보조금을 앞세워 생산시설 확보 경쟁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앞서 재계 관계자가 말한 '적기에 인력을 투입하는 역량', 그 조건을 무엇이 정할지가 다음 국회 논의에서 갈릴 전망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