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야 할 건 일자리가 아니라 이동할 힘] "앞으로 보호해야 할 가치는 특정한 일자리가 아니라 사람의 소득과 이동 능력입니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말입니다. 노동 정책의 목표를 일자리 유지에서 사람의 이동 가능성으로 옮기자는 제안입니다. 서울경제신문이 노동 전문가 102명에게 물은 결과, 이런 발상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소수 의견이 아니었습니다.
서울경제신문이 기업 노무 담당 임원과 교수 등 노동 전문가 1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4.9%가 현행 노동 시스템이 산업·기술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수준을 '미흡' 또는 '매우 미흡'으로 평가했습니다. '양호' 또는 '매우 우수'라는 응답은 12.8%였습니다.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의 4배를 웃돌았습니다.
이 설문이 가리킨 것은 속도 차이입니다. 인공지능 등 기술 혁신으로 산업 현장은 급변하는데, 노동 시스템은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입니다. 획일적 근로시간 규제, 연공서열식 보상, 경직된 인력 운용 같은 제도가 그대로 남아 기업 혁신과 산업 경쟁력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54.9%의 부정 평가는 제도 하나에 대한 불만족이 아니라, 이 격차 전체에 대한 평가였습니다.
압축 전환을 가로막는 노동 분야 걸림돌로는 '대립적 노사 관계 및 사회적 대화 부재'가 21.5%로 가장 많이 꼽혔습니다. '획일적 근로시간 규제'가 21.2%, '경직된 해고·전환배치 규정'이 20.9%로 뒤를 이었습니다. 세 항목의 격차는 0.6%포인트에 불과합니다. 순위라기보다 사실상 동률입니다. 노사 관계와 근로시간, 인력 운용의 경직성이 따로가 아니라 복합적으로 산업 전환을 막고 있다는 뜻입니다.
국가 경쟁력 확보를 위해 시급한 과제로는 '근로시간 운영의 유연성 확대 및 획일적 시간 규제 완화'가 22.5%로 가장 많았습니다. 그런데 노동 이동성 확보(21.6%)와 직무·성과 중심 임금 체계 개편(20.5%)이 비슷한 수준으로 뒤따랐습니다. 세 과제의 격차는 2%포인트입니다. 근로시간만 손대면 된다는 쪽으로 응답이 쏠리지는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근로시간과 인력 운용을 유연하게 하면서, 동시에 연공서열 중심의 임금체계도 함께 바꿔야 한다는 주문입니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일자리의 보호에서 고용 가능성의 보호로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고 말했습니다. 고용 가능성은 지금 다니는 회사의 그 자리를 지켜주는 대신, 근로자가 노동시장에서 다른 일자리로 옮겨갈 수 있는 능력을 보호하자는 개념입니다. 특정 일자리를 지키는 정책에서, 근로자의 소득과 이동 능력을 지키는 정책으로 무게중심을 옮기자는 이야기입니다.
이 조사는 근로자 전체가 아니라 기업 노무 담당 임원과 교수 등 노동 전문가 102명의 의견입니다. 응답자 구성을 함께 봐야 결과의 성격이 보입니다. 다만 세 개의 걸림돌과 세 개의 과제가 모두 1~2%포인트 안에 몰려 있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앞으로 근로시간, 임금체계, 노동 이동성 가운데 어느 하나만 떼어 논의가 진행되는지가 지켜볼 지점입니다. 지켜야 할 것이 특정한 일자리인지, 사람의 이동 능력인지 — 논의는 여기서 갈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