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 17조를 팔았고, 산 것은 로봇뿐입니다 "지금은 AI 기술 격변 때문에 모험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위험한 시대입니다." 국내 한 자산운용사 대표의 말입니다. 이 말의 배경에는 숫자가 있습니다. 국내 10대 대기업 집단이 최근 2년간 시장에 내놓은 계열사와 사업부는 17조 7081억 원 규모입니다. 반대 방향, 즉 새로 사들인 기록은 그만큼 뚜렷하지 않습니다.
2026년 9월 8일 서울경제 시그널 리그테이블 집계와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자산 기준 국내 10대 대기업 집단은 최근 2년 사이 산하 법인과 사업부 18건을 처분했습니다. 금액은 17조 7081억 원입니다. 집계 기준은 좁게 잡혔습니다. 소수 지분 매각은 제외했고, 배타적 협상권을 주는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이후 단계까지 실제로 진행된 경영권 매각만 넣었습니다. 최근 1조 원을 웃도는 소수 지분 거래도 활발한 점을 고려하면, 실제 처분 규모는 2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IB 업계는 보고 있습니다.
시계열로 보면 SK그룹이 가장 앞섰습니다. 2024년 12월 SK㈜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공정용 특수가스를 만드는 SK스페셜티 지분 85%를 사모펀드 운용사 한앤컴퍼니에 2조 7000억 원에 넘겼습니다. 2025년 8월에는 SK에코플랜트가 폐기물 처리 자회사인 리뉴어스·리뉴원· 리뉴에너지충북을 글로벌 운용사 KKR에 매각해 1조 7800억 원을 확보했습니다. 2026년 7월에는 SK㈜가 SK실트론 지분 70.6%를 두산에 2조 3000억 원에 넘기는 거래를 체결했습니다. 2026년 8월에는 롯데그룹이 롯데렌탈 지분 61.2%를 TPG에 매각했습니다.
이런 흐름을 리밸런싱이라고 부릅니다. 비핵심 자산과 사업부를 팔아 사업 구조를 재편하고 현금을 확보하는 전략입니다. 새로 사들이는 M&A와는 반대 방향입니다. 배경은 대내외 환경 악화입니다. SK그룹은 SK하이닉스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는 중에도, SK이노베이션 자회사 SK온의 적자가 쌓여 현금 확보 필요성이 컸습니다. 롯데그룹은 중국발 물량 공세로 석유화학 실적이 나빠졌습니다. 그룹 안에 잘 버는 계열사가 있어도, 다른 쪽 손실이 매각을 불러오는 구조입니다.
실적 악화만이 이유는 아닙니다. 군산조선소를 매각한 HD현대중공업처럼 업황과 무관하게 '선택과 집중'을 위해 비핵심 자산을 정리한 사례도 있습니다. 문제는 확보한 현금의 방향입니다. 대규모 자산을 처분하는 동안 신사업을 위한 M&A는 드물었습니다. 국내 주력 산업은 반도체·자동차·조선·2차전지에 편중돼 있는데, 인공지능(AI)이나 우주항공처럼 미래 산업에 투자한 사례는 특히 적었습니다. 체력은 비축됐지만 구도는 그대로 남았습니다.
앞서 인용한 국내 자산운용사 대표는 "10년·20년 뒤를 위해서는 기업들이 미래 먹거리에 베팅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산 정리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성장 축을 새로 만들지 못한 점을 지적한 것입니다. 반대편 해석도 가능합니다. 패러다임이 바뀌는 국면에서 현금을 쥐고 기다리는 것 역시 하나의 전략이라는 시각입니다. 실제로 SK와 롯데는 한때 문어발식 확장에 주력했던 그룹입니다.
휴머노이드 분야는 예외입니다. 대기업들은 지분을 순차적으로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해 왔습니다. 삼성전자는 2022년부터 3542억 원을 투자해 휴머노이드 개발 기술을 가진 레인보우로보틱스 지분 35%를 확보했습니다. LG전자는 2025년 상업용 자율주행 로봇 기업 베어로보틱스 지분 51%를 확보해 자회사로 편입했습니다. 현대차는 2020년부터 보스턴다이내믹스 주식을 사들여 2026년 7월 지분 100%를 확보했습니다. SK그룹은 SK온 미국법인을 통해 유일로보틱스 2대 주주(13.4%)가 됐습니다.
지금 국내 대기업의 사업 구조를 읽는 기준은 '무엇을 인수했나'가 아니라 '무엇을 팔았나'입니다. 계열사 매각 공시는 그 그룹이 어디에 부담을 느끼는지 보여주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거래 진행 단계를 확인하려면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서 해당 기업의 '주요사항보고서'와 '타법인 주식 및 출자증권 처분결정' 공시를 찾아보면 됩니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과 본계약 체결은 다른 단계라는 점도 함께 봐야 합니다. "모험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위험하다"는 지적이 나온 2년간, 17조 원이 빠져나갔고 되돌아온 방향은 대부분 로봇 한 곳이었습니다.
![10대 그룹, 2년간 17兆 사업 처분…미래 투자보다 리밸런싱 치우쳐 [시그널]](https://wimg.sedaily.com/news/cms/2026/09/08/news-p.v1.20260103.87f7e906a3cc4b4bbeedbd567869e022_P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