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110조를 쓰면, 그 돈은 어디로 가나 "메모리 업사이클의 수혜가 대형주에 먼저 반영된 뒤, 설비투자가 집행되면서 소부장 기업으로 확산될 것으로 전망합니다." 금정섭 한화자산운용 ETF사업본부장의 말입니다. 순서가 있다는 뜻입니다. 반도체 업황이 좋아지면 먼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숫자가 움직이고, 그 다음에 두 회사가 공장에 돈을 씁니다. 그 돈을 받는 곳은 장비와 부품을 만드는 회사들입니다.
한화자산운용은 15일 'PLUS 코리아HBM반도체'와 'PLUS AI반도체소부장액티브' 두 상장지수펀드를 신규 상장한다고 밝혔습니다. 앞의 상품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약 50%를 담고, 나머지 약 50%를 국내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기업 8곳에 배분합니다. 편입된 8곳은 피에스케이·브이엠·테스·원익IPS·심텍·주성엔지니어링· 이수페타시스·대덕전자입니다. 대형주와 후방 기업을 절반씩 나눠 담은 구조입니다.
블룸버그는 글로벌 HBM 시장 규모를 지난해 350억 달러, 올해 680억 달러로 보고, 내년에는 1,0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HBM은 여러 D램 칩을 수직으로 쌓아 데이터가 오가는 통로를 넓힌 메모리 반도체입니다. AI 연산에 쓰입니다. 이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합산 점유율은 약 80%입니다. 수요가 늘면 두 회사가 가장 먼저 받는 구조입니다.
수요를 받으려면 생산능력을 늘려야 하고, 그러려면 설비를 사야 합니다. 발주는 공정 순서를 따릅니다. 깎고 씻고 쌓는 식각·세정·증착 같은 전공정 장비가 먼저 들어가고, 그 뒤에 칩을 포장하고 검사하는 패키징·테스트, 그리고 부품과 기판 기업으로 넘어갑니다. 삼성전자는 올해 시설과 연구개발에 110조 원 이상을 쓸 계획이고, SK하이닉스는 용인 Y2와 청주 M17 등을 포함해 약 54조 3,000억 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밝혔습니다.
투자 계획이 발표됐다고 그날 장비 대금이 지급되는 것은 아닙니다. 계획과 집행 사이에는 시차가 있습니다. 한화자산운용이 상품을 하나로 합치지 않고 둘로 나눈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AI반도체소부장액티브는 운용역이 종목과 비중을 직접 조정하는 액티브 상품으로, 고객사의 설비투자 규모와 장비 발주·양산 일정, 신규 기술 도입 여부를 분석해 편입 종목을 고릅니다. 수주 잔액, 매출·영업이익 전망치 변화, 성장률 대비 주가 수준도 판단 기준입니다. 주요 편입 종목은 이수페타시스· 인텍플러스·두산·ISC·SFA반도체·테스·디아이·피에스케이홀딩스·심텍·한솔케미칼입니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설비투자가 각각 59%, 75%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증권사가 내놓은 추정치이고, 확정된 집행액이 아닙니다. 110조 원과 54조 3,000억 원은 두 회사가 밝힌 계획이고, HBM 시장 1,000억 달러는 블룸버그의 전망입니다. 계획과 전망과 실제 집행은 서로 다른 층위의 숫자입니다.
이름에 같은 단어가 들어가도 안에 담긴 것은 다릅니다. 코리아HBM반도체는 대형주에 약 절반을 고정 배분하고, AI반도체소부장액티브는 운용역이 시장 상황에 따라 비중을 바꿉니다. 편입 종목 명단부터 겹치는 곳과 겹치지 않는 곳이 나뉩니다. 앞서 인용한 전망은 "대형주가 먼저, 소부장이 나중에"라는 순서를 전제로 합니다. 설비투자 집행이 예상보다 늦어지면 그 순서도 함께 늦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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