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전체를 인수하거나 자체 개발하는 것보다 필요한 기술만 빠르게 확보하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휴젤 관계자가 화장품 사업 확장 방식을 두고 한 말입니다. 보툴리눔 톡신과 필러를 만들어 온 기업이 화장품 기술의 사용권을 사들이고 있습니다. 휴젤만의 움직임이 아닙니다.
2026년 9월 14일 업계에 따르면, 휴젤은 화장품 기업을 직접 인수하는 대신 화장품 업체가 보유한 기술의 사용권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뷰티 사업 강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다른 기업이나 연구기관이 개발한 특허·기술을 대가를 지급하고 빌려 쓰는 방식, 업계에서는 이를 라이선스인이라고 부릅니다. 휴젤이 노리는 대상은 피부 전달 기술, 효능평가 기술, 원료·소재 같은 원천 기술입니다. 회사가 이미 갖고 있는 화장품 브랜드 '웰라쥬'와 묶어 쓰겠다는 계산입니다.
확장의 방식은 최근 몇 달 사이 세 갈래로 갈라졌습니다. 리보핵산 기술 기업 올릭스는 2026년 6월 29일 글로벌 뷰티 기업 로레알그룹과 연구개발 협력 범위를 넓히는 계약을 맺었습니다. 두 회사는 지난해 피부와 모발의 재생·노화를 대상으로 공동연구를 진행했고, 이번 계약으로 손톱 건강 분야까지 대상을 확대했습니다. 파마리서치는 2026년 7월 미국 화장품 제조사 코스메틱그룹USA를 인수해 현지 생산 시설을 확보했습니다. 피부과 시술과 연계된 화장품 브랜드 '리쥬란코스메틱'이 세포라와 아마존에 입점하면서 북미 수요가 늘어난 데 따른 대응으로 풀이됩니다.
이 투자를 받치는 것은 본업의 실적입니다. 휴젤의 2026년 상반기 연결 기준 매출은 2,545억 원, 영업이익은 1,037억 원입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은 27.2%, 영업이익은 8.4% 늘었습니다. 파마리서치의 같은 기간 연결 기준 매출은 3,248억 원, 영업이익은 1,238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6%, 23% 증가했습니다. 두 회사 모두 반년 만에 1,000억 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냈고, 그 돈이 화장품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습니다.
돈이 없어서 기술만 빌리는 것은 아닙니다. 휴젤과 파마리서치의 2026년 상반기 기준 현금성 자산은 각각 2,596억 원, 2,203억 원입니다. 화장품 밸류체인, 즉 원료부터 생산·판매까지 이어지는 사슬 안에서 인수합병에 나설 여력은 충분하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그런데도 휴젤은 회사를 사는 대신 필요한 기술만 골라 사는 쪽을 택했습니다. 파마리서치는 반대로 생산 시설을 직접 손에 넣었고,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추가 인수 후보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같은 규모의 현금을 쥐고도 속도를 살 것인지, 설비를 살 것인지에서 선택이 갈렸습니다.
이 흐름의 출발점은 소비자의 순서 변화입니다. 피부과 시술을 받은 뒤 피부장벽 회복과 재생을 목적으로 쓰는 이른바 애프터케어 제품 수요가 부각되고 있습니다. 톡신과 필러를 파는 기업에게는 시술 이후의 화장품이 같은 고객을 다시 만나는 지점입니다. 업계에서는 이 때문에 의료미용과 화장품의 융합이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바이오 기업과 글로벌 화장품 기업의 공동개발이 새로운 확장 방식으로 주목받는 배경도 여기에 있습니다.
시술 후 권유받는 화장품 브랜드의 뒤에 어떤 회사가 있는지 확인해 두면 정보가 정리됩니다. 웰라쥬는 휴젤, 리쥬란코스메틱은 파마리서치가 각각 보유한 브랜드입니다. 두 회사 모두 보툴리눔 톡신과 필러가 본업이고, 화장품은 그 위에 얹힌 사업입니다. "필요한 기술만 빠르게 확보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휴젤 관계자의 말은, 화장품 회사가 아닌 곳에서 화장품 기술이 모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