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기 DB증권 연구원은 "주식시장 박스권에서 엔화의 제한적 강세는 자동차 주가 반등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진단이 나온 배경에는 석 달 사이 사라진 100조 원이 있습니다. 17일 한국거래소 집계 기준 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 3사의 합산 시가총액은 155조 7,496억 원입니다. 6월 15일에는 255조 9,413억 원이었습니다. 같은 종목 안에서 로봇 이야기와 자동차 이야기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1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 3사의 합산 시가총액은 6월 15일 255조 9,413억 원에서 이날 155조 7,496억 원으로 줄었습니다. 감소액은 100조 1,917억 원, 감소율은 39.1%입니다. 낙폭은 종목마다 달랐습니다. 같은 기간 현대차가 43.9% 내렸고, 현대모비스는 40.5%, 기아는 27.8% 하락했습니다. 성장 기대가 가장 크게 반영돼 있던 종목이 가장 크게 빠진 셈입니다.
주가가 얼마나 후하게 평가받고 있었는지는 PER로 확인됩니다. 12개월 선행 PER은 앞으로 1년간 예상되는 이익 대비 주가가 몇 배에 거래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로봇 사업 기대가 반영되던 6월 초 현대차의 12개월 선행 PER은 18배까지 올랐습니다. 현재는 9~10배 수준입니다. 이익 전망이 아니라 이익에 붙는 배수가 절반가량으로 내려앉았다는 뜻입니다. 연초 주가를 끌어올린 성장 프리미엄이 빠르게 걷힌 결과입니다.
프리미엄이 빠진 이유는 여러 갈래입니다. 우선 로봇과 피지컬 AI에 대한 기대가 약해졌습니다. 피지컬 AI는 로봇처럼 실제 몸을 가진 기계가 현실 공간에서 판단하고 움직이도록 하는 기술입니다. 여기에 로봇 사업의 누적 적자와 투자 부담, 기업공개 연기 우려가 겹쳤습니다. 본업 쪽 여건도 좋지 않았습니다. 원화 강세와 글로벌 자동차 수요 둔화가 함께 투자심리를 눌렀습니다. 성장 이야기와 실적 이야기가 동시에 흔들린 구간이었습니다.
원화 강세가 부담이었던 것과 달리, 이달 환율에서는 다른 흐름이 나왔습니다. 달러·엔 환율은 이달 한때 152엔대로 내려갔습니다. 약 7개월 만에 엔화 가치가 가장 높은 수준까지 오른 것입니다. 일본은행의 추가 금리 인상 기대가 환율에 반영된 결과로 해석됩니다. 엔화 가치가 오르면 도요타·혼다 등 일본 업체가 해외시장에서 누려온 환율상 가격 이점이 줄어듭니다. 북미처럼 한국과 일본 업체가 맞붙는 시장에서는 현대차·기아의 상대적 가격경쟁력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증권가의 시각입니다.
강현기 DB증권 연구원의 표현에는 조건이 달려 있습니다. '박스권'과 '제한적 강세'입니다. 엔화가 무조건 오르는 상황이 아니라, 일정 범위 안에서의 강세를 전제로 한 판단입니다. 엔화 강세의 근거 자체도 확정된 사실이 아닙니다. 152엔대라는 수치는 일본은행의 추가 금리 인상 기대가 반영된 것으로, 실제 정책 결정에 따라 방향이 달라질 수 있는 변수입니다. 시가총액 100조 원이 사라진 이유가 여러 갈래였던 것처럼, 반등 논의도 환율 하나로 정리되지는 않습니다.
현대차그룹 3사의 주가를 볼 때 두 축이 섞여 있다는 점입니다. 하나는 로봇·피지컬 AI 기대가 반영되는 배수, 즉 PER입니다. 6월 초 18배에서 9~10배로 내려온 흐름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다른 하나는 완성차 본업의 가격경쟁력이며, 달러·엔 환율이 여기에 걸립니다. 두 축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석 달간 100조 원이 빠진 것은 첫 번째 축에서 벌어진 일이고, 이달 152엔대라는 숫자는 두 번째 축에서 나온 신호입니다. 하락과 반등 논의를 같은 원인으로 묶어 읽지 않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