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을 팔던 관계가, 함께 만드는 관계로 "단발성 무기체계 공급 관계를 넘어, 통합대공망 기술과 산업을 공유하는 파트너십으로 진화하는 전환점입니다." 양기원 한화시스템 대표가 아부다비에서 한 말입니다. 한화는 그동안 중동에 지대공 유도무기의 부품을 납품해왔습니다. 이번에는 한 나라의 영공을 지키는 방공망 자체를 함께 설계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아직 최종 계약은 아닙니다.
한화시스템은 2026년 9월 17일, 이틀 전인 15일(현지 시간) 아부다비 에지그룹 본사에서 아랍에미리트(UAE) 통합대공망 구축 사업에 대한 주요조건 합의서를 체결했다고 밝혔습니다. 에지그룹은 UAE 최대 방산기업입니다. 협약식에는 양기원 한화시스템 대표와 알 마라르 에지그룹 최고경영자 등 양사 관계자가 참석했습니다. 합의서에는 통합대공망 구축과 관련한 무기체계 도입의 추진 방향, 그리고 단계별 검토 내용이 담겼습니다. 주요조건 합의서는 사업의 큰 틀을 먼저 맞춰두는 문서입니다. 물량과 금액이 확정되는 최종 계약과는 다릅니다.
한화는 그동안 중동에 중거리 지대공 유도무기체계 '천궁-Ⅱ'의 구성품을 공급해왔습니다. 표적을 탐지하고 추적하는 다기능레이다, 그리고 발사대와 발사관, 탄 구성품 등입니다. 개별 장비를 만들어 넘기는 공급자 위치였습니다. 한화시스템은 이번 서명의 의미를 다르게 봅니다. 개별 무기체계 공급을 넘어 양사가 중장기 사업 구상을 공유하고, 공동 사업을 구체화할 기반을 마련했다는 것이 회사 측 평가입니다. 납품 계약이 끝나면 관계도 끝나는 구조에서, 사업 단계를 함께 밟는 구조로 옮기려는 시도입니다.
통합대공망은 장비 하나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날아오는 물체의 고도와 거리가 다르면 대응 수단도 달라야 합니다. 한화가 그리는 구상은 '다계층 방공망'입니다. 단거리·중거리·장거리 지대공 유도무기체계와 드론에 대응하는 대드론체계를 하나로 묶어, 여러 구간을 동시에 방어하는 구조입니다. 여기에 천무 다연장로켓 같은 지상무기체계까지 연계해 포트폴리오를 넓힐 계획입니다. 중·장거리 유도무기를 축으로 두고 단거리 방공체계를 연동시키는 방향입니다.
합의서 서명으로 사업이 시작되는 것은 아닙니다. 양사는 정부 간 방산 협력 방향에 맞춰 세부 추진 방안을 구체화하기로 했습니다. 필요한 정부 승인과 협의 절차를 거쳐야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현지 합작법인 설립과 생산·사업 운영 방안은 아직 '검토' 단계로 표현됐습니다. UAE 안에서의 방산 생산과 유지·보수 역량을 키우는 현지화도 단계적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입니다. 즉 지금 확정된 것은 방향이고, 규모와 시점은 이후 절차에 달려 있습니다.
양기원 대표는 "기술협력과 현지화를 단계적으로 확대해 UAE의 방산산업 기반 강화에 기여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알 마라르 CEO의 초점은 자국 산업입니다. "이번 협력은 개별 무기체계 도입을 넘어 UAE의 자립적인 방산 역량과 현지 산업 기반을 확대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한화 측은 UAE를 중동과 제3국 시장 진출의 교두보이자 전략적 거점으로 육성할 방침입니다. UAE의 산업 기반과 한화의 방산 역량을 결합해 글로벌 시장의 공동 사업 기회도 발굴할 예정입니다. 사는 쪽은 자립을, 파는 쪽은 거점을 말했습니다.
이 발표에서 실제 사업의 크기를 가를 지표는 무기 이름이 아니라 '현지화'와 '합작법인'입니다. 두 항목이 검토에서 확정으로 넘어가는지, 그 과정에 필요한 정부 승인이 언제 나오는지를 보면 진행 정도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회사의 공식 진행 상황은 한화시스템 및 한화 기업 공시와 보도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부다비에서 서명된 문서는 부품 납품서가 아니었습니다. 다만 아직, 계약서도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