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거북이는 유죄, 세한도는 무죄 — 2년이 깎인 이유 🐢 “국민이 느낀 실망감과 자괴감은 그 어떤 방법으로도 치유될 수 없게 됐다.” 22일 서울고법 형사15-3부(재판장 성언주 고법판사)가 김건희 여사 항소심 선고에서 읽은 문장입니다. 그런데 같은 재판부는 이날 1심 판결을 파기하고 형량을 낮췄습니다. 꾸짖는 문장과 줄어든 형량이 한 법정에서 함께 나왔습니다.
서울고법 형사15-3부는 22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알선수재) 혐의 항소심 선고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김 여사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습니다. 1심은 공소사실 전부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7년을 선고했습니다. 알선수재는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일을 청탁·알선해 주겠다는 명목으로 금품을 받는 행위를 말합니다. 재판부는 이우환 작가 그림 등을 몰수하고 2,440만 원 추징도 함께 명했습니다. 감형의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일부 금품은 청탁의 대가로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혐의는 대부분 2022년 상반기에 집중돼 있습니다. 김 여사는 2022년 3월 15일부터 5월 20일까지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으로부터 맏사위인 박성근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의 인사 청탁 명목으로 반클리프 아펠 목걸이와 귀걸이 등 총 1억 380만 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같은 해 4월과 6월에는 이배용 전 국가교육위원장으로부터 265만 원 상당의 금거북이와 ‘세한도’를 받은 혐의가 더해졌습니다. 로봇개 사업 지원 청탁 명목으로 사업가 서성빈 씨로부터 3,390만 원 상당의 바쉐론 콘스탄틴 손목시계를 받은 혐의도 포함됐습니다.
알선수재가 성립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공무원의 직무를 알선한다는 ‘명목’, 그리고 금품과 청탁 사이의 ‘대가성’입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회장이 건넨 금품, 이 전 위원장의 금거북이, 김상민 전 검사로부터 받은 이우환 화백 그림, 최재영 목사로부터 받은 디올 가방에 대해 대가성을 인정했습니다. 근거는 간결했습니다. 공여자의 막연한 기대감만으로 고가의 물품을 전달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같은 기준을 나머지 두 건에 적용한 결과가 무죄였습니다.
세한도에 대해 재판부는 “전통 한지 홍보용 인쇄물의 성격으로, 금거북이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봤습니다. 이 전 위원장 임명 청탁 시기와 전달 시기가 가깝더라도 전통 한지 홍보와 문화유산 등재라는 별도 목적을 배제할 수 없다는 판단입니다. 손목시계는 구매 주체와 별개로 특검 측 증명이 부족하다고 봤습니다. 재판부는 “서성빈이 자신의 비용으로 시계를 구매해 피고인에게 제공한 것이 아닌지 강한 의심이 든다”면서도, 시계 수수 전후로 서 씨가 대통령 경호처와 사업을 추진하려 한 정황을 찾을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미 확정된 사업을 절차에 따라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도 덧붙였습니다.
재판부는 양형 이유에서 대통령 배우자의 영향력을 사적 거래 대상으로 삼은 점을 비판했습니다. “국정 전반의 투명성과 공정성, 국가 정책과 공직 인사에 대한 국민 신뢰가 심각하게 훼손됐다”고 했습니다. 또 “공여자들이 대통령 배우자의 영향력 행사를 기대했음을 피고인은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다”며 지위를 망각하고 금품을 반복 수수했다고 질타했습니다. 감형 사유로는 일부 혐의를 인정하고 반성한 점, 금품을 먼저 요구하거나 알선에 적극 나서지 않은 점이 반영됐습니다. 변호인단은 선고 직후 일부 무죄에 의미가 있다면서도 나머지 유죄 판단에는 동의하기 어렵다며 상고 의사를 내비쳤습니다.
금품을 제공한 이 전 위원장의 결론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는 인사 청탁 명목으로 265만 원 상당의 금거북이와 세한도를 제공한 뒤 비서를 통해 증거인멸을 교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전 위원장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 판단을 유지했습니다. “1심과 비교해 양형 조건에 변화가 없고, 원심의 형이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났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입니다.
이번 판결은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닙니다. 변호인단이 상고 의사를 밝힌 만큼 대법원 판단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유죄와 무죄를 가른 기준은 물건의 가격이 아니었습니다. 265만 원어치 금거북이는 유죄가 됐고, 3,390만 원짜리 손목시계는 무죄가 됐습니다. 무엇을 받았는지가 아니라, 어떤 명목으로 받았고 그 대가성이 증명되는지가 결론을 갈랐습니다. “치유될 수 없다”는 문장과 2년 줄어든 형량이 함께 나온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