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학습 데이터 61%가 영어인 세계, 카자흐 부총리가 서울에 온 이유 🛬 이달 중순, 카자흐스탄의 자슬란 마디예프 부총리가 서울의 LG AI연구원을 직접 찾았습니다. 그는 카자흐스탄의 국가 AI 정책을 총괄하는 AI·디지털개발부 장관도 겸하고 있습니다. 이홍락 LG AI연구원장과 만나 손에 쥔 것은 AI 분야 협력 업무협약(MOU)이었습니다. 세계 AI 학습 데이터의 61.1%가 영어인 지금, 카자흐어는 통계에 아예 잡히지 않습니다. 장관이 비행기를 탄 이유는 여기서 시작합니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LG AI연구원은 이달 중순 카자흐스탄 정부와 AI 협력 MOU를 체결했습니다. 자체 개발 모델 '엑사원' 기술을 활용해 현지 기업·대학과 카자흐어 모델을 공동 개발하고, 이를 산업·에너지·의료·물류 분야에 응용하기로 했습니다. 인재 양성도 협력 항목에 들어갔습니다. 다음 달에는 중동으로 무대가 옮겨갑니다. LG AI연구원은 중동의 한 국부펀드와 '엑사원 비즈니스인텔리전스(BI)' 사업 협력 MOU 체결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LG AI연구원이 영어를 쓰지 않는 신흥국과 AI 공동 개발이나 사업화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순서를 따라가 보면 흐름이 보입니다. 지난해 9월, LG AI연구원은 영국 런던증권거래소그룹(LSEG)을 엑사원 BI의 고객사로 확보했습니다. 엑사원 BI는 상장사 8,000여 개를 분석해주는 금융 특화 모델입니다. 올해 4월에는 '엑사원 4.5'를 공개했습니다. LG AI연구원은 이 모델이 과학·기술·공학·수학 성능 지표에서 오픈AI의 'GPT-5 미니', 앤트로픽의 '클로드 소넷 4.5'를 앞섰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제조 특화 모델 '엑사원 타뷸라', 신소재 연구용 '엑사원 디스커버리'도 잇달아 내놨습니다. 국내에서 모델을 고도화하고 사업 기반을 굳힌 뒤, 이달 중앙아시아로 나간 셈입니다.
신흥국들이 한국 기업을 찾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종속 우려입니다. 자국의 언어·문화·법률·규제에 맞추고 데이터가 해외로 빠져나가지 않는 AI, 즉 소버린 AI를 갖고 싶은데, 미국·중국 빅테크 모델을 그대로 가져다 쓰면 강대국 기술에 묶이게 됩니다. 다른 하나는 성능입니다. 빅테크 모델은 신흥국 언어를 제대로 학습하지 못해 효율이 떨어집니다. 세계은행의 '2026년 세계 개발 보고서'를 보면 이유가 분명합니다. 올해 AI 개발자 커뮤니티 허깅페이스에 등록된 언어별 학습 데이터셋 비중은 영어 61.1%, 그 외 유럽 언어 26.3%, 중국어 5.4%였습니다. 아랍어는 2.4%, 카자흐어는 통계에 잡히지도 않았습니다.
여기서 예상과 다른 지점이 나옵니다. 같은 통계에서 한국어 비중은 2.2%입니다. 아랍어보다도 낮습니다. 데이터 환경만 보면 한국도 신흥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처지입니다. 그런데 그 불리한 조건이 오히려 자격이 됐습니다. 한국 기업들은 학습 데이터가 부족한 언어로 모델을 직접 만들고 상용화까지 해본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신흥국에 없는 것이 바로 그 기술력과 노하우입니다. 첫 고객이 신흥국이 아니라 영국 LSEG였다는 점도 같은 맥락에서 읽힙니다. 데이터가 적은 언어로 쌓은 기술이 영어권 금융시장에서 먼저 검증된 뒤, 다시 신흥국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LG만의 움직임은 아닙니다. 네이버는 태국어·아랍어 대규모언어모델(LLM)을 개발하고 있고, SK텔레콤과 업스테이지도 비슷한 협력을 맺었습니다. 국내 소버린 AI 개발사들이 앞다퉈 신흥국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국내 기반도 함께 움직입니다. LG AI연구원은 그룹 차원의 엔비디아 동맹에 맞춰 엔비디아의 AI 개발 플랫폼 '네모트론'을 활용한 차세대 모델을 공동 개발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주도하는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 사업에도 참여해 'K엑사원'을 고도화하는 중입니다.
이 경쟁의 기준은 모델 순위표가 아닙니다. 학습 데이터가 부족한 언어를 다뤄본 경험이 거래 조건이 되고 있습니다. 카자흐어 0%, 한국어 2.2%라는 숫자가 같은 테이블에 앉는 이유를 만든 셈입니다. 앞으로 확인할 지점은 두 개입니다. 다음 달 중동 국부펀드와의 MOU가 실제로 체결되는지, 그리고 실증(PoC)을 거쳐 엑사원 BI가 정식 서비스로 넘어가는지입니다. MOU는 협력 의사를 적은 문서이지 계약이 아닙니다. 부총리가 직접 서울까지 온 이유가 성과로 바뀌는지는 그 두 단계에서 드러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