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받는 쪽이 평가하는 쪽에 20억을 냈습니다 🧾 기자가 직접 금융인 설문에 응답해봤습니다. 이름과 소속, 전문 분야를 입력하니 끝이었습니다. 정말 그 회사에 다니는지 확인하는 절차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부산에 10점, 뉴욕과 런던과 홍콩에 각각 1점을 주는 것도 가능했습니다. 이 설문 점수가 세계 금융중심지 순위를 정하는 핵심 지표입니다.
◾ 20억 233만 원이 어디로 갔나
2026년 9월 28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서울시와 부산시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종합한 결과입니다. 서울시와 부산시, 부산국제금융진흥원이 2018년 이후 영국 컨설팅사 지옌(Z/Yen) 관련 사업에 집행한 금액은 총 20억 233만 원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지옌에 직접 지급한 돈만 19억 8,949만 원입니다. 지옌은 글로벌금융센터지수(GFCI)를 만드는 회사입니다. GFCI는 매년 3월과 9월 두 차례 발표되는 세계 금융중심지 경쟁력 순위입니다. 평가를 받는 도시가 평가를 매기는 회사에 돈을 낸 구조입니다.
◾ 서울은 연회비, 부산은 지면광고
돈이 흘러간 경로는 셋으로 나뉩니다. 서울시는 2018년 지옌 멤버십에 가입한 뒤 올해까지 연회비로 15억 3,169만 원을 집행했습니다. 부산의 금융중심지 육성 업무를 담당하는 부산국제금융진흥원은 2020년부터 올해까지 관련 사업에 4억 6,318만 원을 썼습니다. 부산시도 2020년 부산금융중심지 홍보를 위한 지면광고비로 746만 원을 지옌에 지급했습니다. 같은 기간 부산의 순위는 올랐습니다. 2020년 51위였던 부산은 2026년 9월 16일 발표에서 117개 금융중심지 중 22위를 기록했습니다. 역대 최고 순위입니다. 부산시는 그동안 이 순위 상승을 부산국제금융센터(BIFC) 조성 등 금융중심지 육성 정책의 성과 지표로 활용해왔습니다.
◾ 설문 점수는 뉴욕과 같은데, 최종 점수는 낮다
GFCI는 두 가지를 합쳐 만듭니다. 하나는 세계은행(WB)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이 공개하는 정량지표입니다. 다른 하나는 금융인들이 각 도시에 매긴 설문 점수입니다. 이 둘을 합산해 최종 순위를 정합니다. 그런데 부산은 두 점수 사이의 간격이 큽니다. 부산의 금융인 평가 점수는 832점으로 1위 뉴욕과 똑같았고, 2위 런던(811점)보다 21점 높았습니다. 반면 정량지표까지 반영한 최종 점수는 737점으로 뉴욕(761점)과 런던(757점)을 밑돌았습니다. 설문에서는 세계 1위인데, 숫자를 넣으면 순위가 내려갑니다. 지옌 측은 이 격차에 대해 "강한 마케팅의 영향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 BIFC가 선 지 12년, GRDP 비중은 그대로 4%대
순위는 51위에서 22위로 올랐지만, 지역 경제 규모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금융중심지혁신포럼 회장인 이유태 부경대 교수는 "부산의 지역내총생산(GRDP) 전국 대비 비중은 BIFC가 조성된 2014년 이후에도 쭉 4%대에 머물러 있다"고 말했습니다. GRDP는 그 지역에서 만들어진 재화와 서비스의 부가가치를 모두 더한 값으로, 지역 경제의 실제 크기를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이 교수는 "GFCI는 마케팅에 따라 순위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 지자체가 순위 경쟁에 매달리는 것은 결국 컨설팅 업체의 배만 불려주는 셈"이라며 "금융중심지의 성과는 GRDP, 금융회사와 전문인력·고용 증가 등 지표를 통해 평가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말했습니다.
◾ 만드는 쪽과 컨설팅하는 쪽이 같다
해외에서도 같은 지적이 나왔습니다. 요헨 비더만 세계금융센터연합(WAIFC) 디렉터는 올 3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GFCI 설문이 지역적 편향에 취약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짚었습니다. 지옌이 GFCI를 산출하면서 동시에 금융중심지 경쟁력 제고를 위한 자문도 제공한다는 점입니다. 순위를 매기는 회사가 순위를 올리는 방법도 파는 구조여서, 잠재적 이해상충 요인이라는 것입니다.
◾ 한 가지만 기억한다면
같은 도시에 대해 두 개의 숫자가 있습니다. 설문 점수 832점과 최종 점수 737점. 어느 도시의 순위 발표를 보든, 그 순위가 설문에서 온 것인지 통계에서 온 것인지 나눠 보면 읽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김현정 의원은 "서울과 부산의 국제적 인지도가 높아진 것은 긍정적이지만, 금융중심지의 성과를 외부기관 순위만으로 판단할 순 없다"며 "금융회사 유치와 일자리 증가 등 실제 변화로 함께 확인될 수 있도록 지역의 특성에 맞는 지원책을 구체화해 나가겠다"고 말했습니다. 기자가 이름과 소속만 적고 통과한 그 설문이, 지금까지 20억 원의 근거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