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전자' 꿈꾸다 '5만 전자'로 — 삼성전자 위기론의 실체
불과 한 분기 전만 해도 '10만 전자'를 기대하게 만들었던 삼성전자였다. 어닝서프라이즈로 시장을 놀라게 했던 그 기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3분기 들어 주가는 52주 신저가를 다시 쓰며 5만 원대까지 밀려났고, 임원들이 백억 원대 자사주를 사들이며 방어에 나섰지만 하락세를 되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주가 하락의 직접적인 방아쇠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대규모 매도였다. 두 달 남짓한 기간 동안 외국인이 순매도한 삼성전자 주식 규모는 10조 원을 넘었다. 여기에 3분기 잠정실적이 발표되면서 상황은 더 나빠졌다. 매출은 전 분기보다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오히려 직전 분기 대비 크게 줄었고, 시장 예상치에도 10%대 초중반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부진의 진앙은 반도체 사업부였다. 서버·HBM 수요는 견조했지만 일부 모바일 고객사들의 재고 조정과 중국 업체들의 저가 레거시 제품 공급 확대가 겹치며, 삼성전자의 주력 상품인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이 한 달 새 두 자릿수 넘게 떨어졌다. 스마트폰과 PC 판매 부진으로 고객사들이 쌓아둔 재고가 좀처럼 소진되지 않은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더 뼈아픈 대목은 HBM 경쟁에서의 뒤처짐이다. 엔비디아의 승인을 받으며 기대를 모았던 신제품 공급이 퀄 테스트 지연으로 늦어지는 사이, 경쟁사는 이미 다음 세대 제품을 양산하며 엔비디아 공급까지 확보했다. 전체 D램 시장 점유율 격차도 좁혀지면서, 삼성전자가 지켜온 'D램 1위' 지위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파운드리 사업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대만의 최대 경쟁사가 시장 점유율 절반을 훌쩍 넘는 동안 삼성전자는 10%대 초반에 머물렀고, 수주 부진으로 조 단위 적자가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원화 강세로 인한 수출 수익성 하락과 일회성 비용 증가까지 겹치며, 결국 반도체 사업부문장이 실적에 대해 이례적으로 공개 사과하는 상황까지 나왔다.
시장은 이번 위기를 '반도체 산업 전체의 겨울'이 아니라 '삼성전자만의 겨울'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내년 반도체 업황 자체는 여전히 호황이 예상되는데, 삼성전자만 그 흐름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것이다. HBM과 파운드리라는 두 축에서의 기술 격차는 단기간에 좁히기 어려운 문제인 만큼, 4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도 한 달 전보다 크게 낮춰졌다.
다만 완전히 비관적인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AI 시장 확대라는 큰 흐름을 감안하면 반등의 여지는 여전히 남아 있고, 관건은 결국 차세대 HBM 경쟁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있는가다. '고강도 쇄신'을 선언한 삼성전자가 이 격차를 얼마나 빨리 좁힐 수 있을지가 앞으로의 주가를 가를 핵심 변수로 꼽힌다.
→ 위기의 이름은 '반도체'가 아니라 '삼성전자'라는 게 시장의 냉정한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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