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공시 12건, 돈이 들어온 곳과 나간 곳 35억 달러. 원화로 약 4조 7,100억 원입니다. 삼성E&A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비료 생산시설 공사를 따낸 규모입니다. 같은 시기 공시된 다른 상장사들의 내용은 이보다 훨씬 작았습니다. 그런데 그 목록에는 회사 안으로 돈이 들어오는 결정만 있지 않았습니다.
2024년 9월 상장사 주요 경영사항 공시에 따르면, 삼성E&A는 사우디아라비아 비료 생산시설 공사를 35억 달러, 약 4조 7,100억 원 규모로 수주했습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크로아티아 국방부에 천무 다연장로켓을 6,411억 원 규모로 수출 판매합니다. 천무는 한국이 개발한 지대지 로켓 무기체계입니다. 국내 계약도 있었습니다. 지엔씨에너지는 LG유플러스 파주센터4동에 발전기를 공급하는 487억 원 규모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같은 공시 목록에는 날짜가 붙은 안건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아세아텍은 9월 28일 임시 주주총회 소집을 공고했고, 안건에 사내이사 재선임이 포함됐습니다. 지역난방공사는 9월 30일 임시 주주총회 소집을 공고했으며, 상임이사 선임 안건이 올라 있습니다. 아세아제지는 현금·현물 배당을 위한 주주명부폐쇄 기준일을 9월 30일로 정했습니다. 주주 명단을 확정하는 날짜입니다. 알리코제약은 김대훈 대표를 새로 선임해 이항구·김대훈 각자 대표 체제로 바뀌었습니다. 사람과 날짜가 함께 정리되는 시기였습니다.
공시는 한 줄로 나열되지만 성격은 갈립니다. 첫째는 매출로 이어지는 계약입니다. 수주와 수출, 공급 계약이 여기 들어갑니다. 둘째는 자금 흐름입니다. 다른 회사에 돈을 넣는 출자, 계열사를 위한 담보 제공, 빚을 늘리는 차입 결정이 해당합니다. 셋째는 지배구조와 주주 관련 사항입니다. 대표 선임, 이사 선임, 배당 기준일, 주주총회 소집이 이 범주입니다. 같은 날 발표됐다는 이유로 성격까지 같지는 않습니다.
SGC에너지는 사모펀드 'SGC-KIS 제1호 사모투자합자회사'에 869억 원을 출자하기로 했습니다. 출자 뒤 지분율은 99.7%입니다. 현대건설은 계열사 지티엑스씨에 720억 원 규모 담보를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회사가 직접 돈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계열사의 빚에 책임을 얹는 구조입니다. 마음AI는 160억 원 규모로 단기차입금을 늘리기로 결정했습니다.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빚이 그만큼 늘어난다는 뜻입니다.
공시는 결정과 금액을 알리는 문서입니다. 이번 목록에도 회사 측의 배경 설명이나 전망은 따라붙지 않았습니다. 자금이 들어오는 경로도 서로 달랐습니다. 아티스트스튜디오는 매일방송을 대상으로 400억 원 규모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습니다. 특정 상대에게만 신주를 주고 돈을 받는 방식입니다. 계약으로 버는 돈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한국알콜은 미리캐피털 보유 지분이 14.53%에서 14.75%로 0.22%포인트 늘었다고 알렸습니다. 작은 변동도 공시 대상입니다.
금액이 큰 공시가 아니라, 날짜가 적힌 공시를 먼저 확인하는 편이 실용적입니다. 배당을 받으려면 주주명부폐쇄 기준일에 주주 명단에 올라 있어야 합니다. 아세아제지의 기준일은 9월 30일이었습니다. 주주총회에 참석하거나 의결권을 행사하려면 소집 공고에 적힌 날짜와 안건을 봐야 합니다. 아세아텍은 9월 28일, 지역난방공사는 9월 30일이었습니다. 공시 원문은 전자공시시스템에 그대로 공개됩니다. 4조 7,100억 원짜리 수주 한 건보다, 내 계좌와 연결된 날짜 한 줄이 먼저입니다.


